관련 글: 하루: 발설, 소통


선천적인 카운슬러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하지만, 대부분의 INFP형은 친구를 선택하는데 상당히 까다로우며, 특별한 소수의 친구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INFP성격(출처는 여기)


언젠가 이곳에 간단하게나마 쓴 적이 있다. 새 학년이 되면 이전에 같은 반이었던 사람들과는 모르는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특별히 싫어하거나 외톨이가 아니었던 만큼이나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었던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초중고등학생 시절, 그저 반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아해 한 명. 그런 인물이 루인이었다고 기억하고 그저 무난하게 지냈던 시절들. 갑자기 떠오른 기억 속에서, 어쩌면 같은 반에 있어도 자리가 바뀌면 상대방은 모르는 누군가로 변하기도 했다. 앞뒤로 앉아서 그 순간만큼은 친한 것 같다가도 자리가 바뀌면 애써 찾아가서 얘기를 나누지 않는, 그런.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관계는 가볍고 오프라인 관계는 더 돈독하다는 식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 노력하지 않으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마찬가지다.)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9년 전.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그 친구와 오랜 시간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물론 다른 여러 만남처럼 처음 한동안은 오랫동안 친구로 남고 싶다고,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품기 마련이다. 아마 그 친구와도 그런 바람은 품었겠지만 얼마나 오래 만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짐작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람에겐 큰 미련을 가지지 않는 루인이고, 결국은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기에 상대방을 내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품지 않는 편이다. 아니 내일도 만났으면 하는 기대를 품을 때조차 만나 봐야 알 수 있는 거라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내일 만나요"라는 말은 관용어로 사용한다 해도 믿지는 않는다. (약간 생뚱맞지만,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방식과 관련 있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다. 그러며 깨달은 건, 아무리 짧은 시간 친밀함을 형성한다고 해도 결국 오랜 시간을 만난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 물론 그 친구는 루인에게 스승과도 같기에 더 각별한 면이 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루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니까. 페미니즘과 만날 기회가 훨씬 늦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친구 역시 루인에겐 각별하다. 2000년부터 알고 지낸 그 친구는, 루인이 결혼식장에 갈 유일한 친구였고, 결혼식장에 간 유일한 친구이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결혼식장에 가지도 않았겠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다른 친구는 왠지 결혼을 안 할 것 같아서… 흐흐.)


물론 사람마다 친해지는 속도는 다르다. 어떤 사람과는 며칠 만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과는 일 년 넘게 자주 만나지만 어색하기도 하다.


아, 문득 깨달은 것. 하지만 언제나 알고 있는 것. 루인의 핸드폰에 "친구"라는 폴더로 전화번호를 저장한 3명은 모두 염소자리. 푸훗. 이럴 때 별자리를 빼고 설명할 수 없는데, 맞다. 좀더 편하게 혹은 빨리 친해지는 사람은 대부분 염소자리 아니면 1월생이었다. "이었다"라고 과거 시제를 적은 건, 금방 친해졌지만 아주 빨리 헤어진 사람도 1월생이었다. (왠지 이 글의 방향이 별자리로 흐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천천히 친해질수록 오래 만나고 빨리 친해질수록 빨리 헤어지는 건, 결국 열역학 법칙에 따른 건가? 웩!


하지만, 위에 인용한 INFP의 설명처럼 많은 사람들과 무난하게 친해진다고 해도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친구"라는 말을 사용하는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르고), 그 시간이 참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 상대방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상대방도 루인을 친구로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이다. 내일이 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고, 그래서 한 시간 전까지 친했다가도 한 시간 뒤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에 어떤 확신도 가지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지낸다는 건, 그런 확신이 조금씩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오랜 시간을 지냈다고 해서 변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전에도 적었지만, 9년이란 시간을 알아온 친구지만, 여전히 길에서 만나면 얼굴이 긴가민가하다. 그 친구와의 갑작스런 만남에 익숙해진 건 얼마 안 되는 일이고. 몇 년을 만나도,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만난다는 건, 그동안 알지 못했던 행동에도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고, 무얼 하건 지지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리하여 관계를 맺으며 느끼는 불안함이 서서히 옅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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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래 만났다는 건, 그 시간 동안의 불안을 견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7/03/18 16:33 2007/03/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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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병군  2014/08/26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홋...전 INTP형인뎁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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