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 수강생의 토론 중에 저항과 동화를 둘러싼 논쟁이 나왔다. 물론 무조건 저항이 좋다거나 동화는 나쁘다는 식의 논쟁은 아니고 그것의 복잡한 지형을 이야기했다.

같은 수업에서 10대 여성 혹은 청소년 여성을 범죄와 구금을 둘러싼 지형을 다룬 논문을 같이 읽었다. 페미니즘 범죄학 논의에 익숙하다면 특별히 새로운 논의는 아닌데, 여성 수용인의 상당수는 가정폭력 등 폭력 피해 경험이 있고 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 전략이 범죄로 구성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논의와 연결해서, 저항은 언제나 어떤 선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저항은 규범이 수용하는 한도 내에서 발생할 때는 저항으로 인식되지만 그 한도를 넘어서는 순간 범죄가 된다. 다른 말로 저항에 대한 찬양은 가장 규범적인 존재의 호사로운 취향일 위험이 크다. 이 사회가, 지배규범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저항을 할 때, 이 사회와 지배 규범이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저항을 할 때 저항하는 자는 범죄자가 되거나 죽음에 내몰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올 초 세상을 떠난 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가장 열심히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애쓰던 이들은 많이 지쳤고 먼저 좀 쉬겠다며 세상을 떠났다. 저항은 멋진 것이기보다 고통스럽고 위험하고 외로운 것이리라. 나는 저항과 동화주의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유와 태도를 경멸하고 그것은 삶을, 운동을, 복잡한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저항할 용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나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그림자를, 남겨진 이들의 울음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요즘 다른 이유로 울음을 참고 있다. 아직은 울 때가 아니라고... 소중한 사람을 위로하며 아직은 울 때가 아니라고... 이러다 울음에 체하지는 않기만 바랄 뿐이다.



2021/05/16 20:53 2021/05/1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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