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 자잘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는 정리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어딘가에 있을 건데, 하는 기대와, 꼭 있어야 하는데, 하는 바람이 뒤섞인 행동이었다. 다행이도, 예상했던 곳에 있었다. 우헤헤. 좋아라~ 웃으면서 수도를 틀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 있을 흔적들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올란도]를 읽다가, 올란도가 글을 쓰는 장면들에서 단어 하나가 걸렸다. 아아, 저렇게 글을 쓸 때가 있었는데, 하는 중얼거림과 기묘한 허영이 동시에 생겼다. 대충 1585년부터 1928년까지 살았던 올란도가 사용할 수 있는 글쓰기 도구는 하나, 만년필! [올란도]를 읽던 날 밤, 만년필을 찾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 있는 잉크를 씻어냈다.
중학생 시절이었나. 김소운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한 누군가의 수필집에서 만년필과 관련한 글을 읽었다. 내용은 짐작 가능한 그대로인데, 좋은 만년필을 쓰면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느니, 그래서 누가 더 좋은 만년필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곤 했다느니, 그럼에도 오래된 만년필에 익숙해서 좋아했다느니 하는 내용들. 그 글을 읽으며 든 첫 감상은, '만년필은 비싼 사치품인가 보다' -_-;;였고, 그와 동시에 든 감상은 '만년필로 글을 써보고 싶다'란 허영심이었다.
만년필을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당시엔 만년필대와 펜촉을 따로 팔았고, 그들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으니까. 그 제품의 문제는 잉크에 펜촉을 담갔다가 사용해야 해서, 잉크가 새는 경우가 많았고, 잉크를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었다는 것. 그럼에도 허영심에 없는 돈을 모아서 샀는데, 흐흑.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만년필을 사용하면 정말 괜찮지만, 사흘만 지나도 자기가 쓴 글씨를 자기가 못 알아보는 그런 사람이 쓰면, 정말이지… ㅠ_ㅠ 물론 성깔 나쁜 루인이 자기 탓만 할 리는 없고;;; 펜촉의 질이 나쁘다느니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의 문제일 뿐이라느니 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만년필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조금만 잘 못 다뤄도 손이 금방 더러워진다는 것이었고, 볼펜과 달라 물에 젖으면 글씨가 모두 번져서 그렇잖아도 못 알아보는 글씨를 더 못 알아보게 된다는 것.
그렇게 만년필을 얼마간 사용하다가 곧 시들해져선, 다시 모나미153 볼펜을 애용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이유인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선물로 꽤나 괜찮은 만년필을 받았다! (만년필 전문가들에게도 꽤나 괜찮은 만년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인에겐 너무도 멋진 만년필이었다.) 우헤헤. 그것도 잉크병에 펜촉을 담겼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잉크 카트리지만 갈아주면 되는, 그래서 잉크가 흐를 염려가 없는 그런 만년필! 이 허영심을 어쩌지 못하고,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해선 몇 년 간, 물에 젖어도 문제가 없을 그런 글은, 모두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다(수업노트도 만년필로 썼다 -_-;;; 크크크). 그러다 또 얼마간의 불편함으로 쓰기를 중단하고 볼펜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시 허영심이 들면 만년필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만년필을 잊었고, 만년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았다.
만년필을 찾고, 문구점에 가서 잉크 카트리지를 사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는데, 으아, 좋아. 흐흐. 괜히 자꾸만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어찌할 수 없어,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을 끄적이기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게 가능한 건 펜글씨를 선호하기 때문일테다. 물론 이러다 또 시들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한시적으로나마 이런 허영심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라고 우기고 있달까. 흐흐. ;;
하지만 만년필과 관련한 글을 써야지 했던 건, 며칠 전 라디오를 듣다가 종이에 펜으로 쓴 편지를 손글씨로 표현하는 디제이의 말을 듣고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펜으로 쓰는 것 뿐 아니라 키보드를 통해 글을 쓰는 것 역시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펜으로 글을 쓰는 루인이지만, 한편으론 모니터를 보며 글을 쓰고 수정하고, 꽤나 긴 글도 모니터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꽤나 부러워하는 편이다. 펜으로 글을 쓴다는 건, 수정을 할 때도 일일이 다 프린트해서 펜으로 수정을 한다는 걸 의미하는데, 사실 이러다보면 꽤나 많은 종이를 낭비하기 마련이다. 이면지를 활용하거나 양면을 다 활용한다고 해도 종이가 소비되지 않은 건 아닌데, 이런 점에서 항상 갈등을 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를 볼 때마다, 적어도 모니터로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어지간한 논문을 읽을 수 있다면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좋은 글을 쓰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흑, 이제까지 쓴 글을 떠올리면ㅠ_ㅠ 이럴 때마다 이순원씨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는 글을 쓸 때마다 자기가 살던 곳의 나무들을 떠올린다고.
또 다른 상념으로 넘어가면,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모니터로 글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기에 종이책은 적어도 백 년 안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추세론 훨씬 일찍 종이책이 없어질 것 같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로 비용이 적게 들어갈 테니까. (비용하니까 떠오른 불안은, 이러다 전공서적들 혹은 이른바 "전문서"들은 죄다 전자출판을 하는 건 아닐런지. 흑. 그러면 안 되는데…) 어쩌면 몇 십 년 안에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보다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더 많아 질지도 모르겠다. 뭐, 이러다 언젠가 종이책은 고대의 유물이 되겠지. 흐흐.
+
논문도 펜으로 쓸 수밖에 없는데, 그 원고를 보관하면 의미가 있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했다. 흐흐. -_-;; 예전에 작가들이 모두 키보드로 글을 쓰면서 "육필원고"가 없다는 말이 떠올라 이런 상상을 했지만, 이런 상상을 하기 전에 공부나 좀 하라고! 흑흑흑(←내일 있을 어떤 일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기대하는 울음)
[올란도]를 읽다가, 올란도가 글을 쓰는 장면들에서 단어 하나가 걸렸다. 아아, 저렇게 글을 쓸 때가 있었는데, 하는 중얼거림과 기묘한 허영이 동시에 생겼다. 대충 1585년부터 1928년까지 살았던 올란도가 사용할 수 있는 글쓰기 도구는 하나, 만년필! [올란도]를 읽던 날 밤, 만년필을 찾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 있는 잉크를 씻어냈다.
중학생 시절이었나. 김소운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한 누군가의 수필집에서 만년필과 관련한 글을 읽었다. 내용은 짐작 가능한 그대로인데, 좋은 만년필을 쓰면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느니, 그래서 누가 더 좋은 만년필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곤 했다느니, 그럼에도 오래된 만년필에 익숙해서 좋아했다느니 하는 내용들. 그 글을 읽으며 든 첫 감상은, '만년필은 비싼 사치품인가 보다' -_-;;였고, 그와 동시에 든 감상은 '만년필로 글을 써보고 싶다'란 허영심이었다.
만년필을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당시엔 만년필대와 펜촉을 따로 팔았고, 그들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으니까. 그 제품의 문제는 잉크에 펜촉을 담갔다가 사용해야 해서, 잉크가 새는 경우가 많았고, 잉크를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었다는 것. 그럼에도 허영심에 없는 돈을 모아서 샀는데, 흐흑.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만년필을 사용하면 정말 괜찮지만, 사흘만 지나도 자기가 쓴 글씨를 자기가 못 알아보는 그런 사람이 쓰면, 정말이지… ㅠ_ㅠ 물론 성깔 나쁜 루인이 자기 탓만 할 리는 없고;;; 펜촉의 질이 나쁘다느니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의 문제일 뿐이라느니 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만년필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조금만 잘 못 다뤄도 손이 금방 더러워진다는 것이었고, 볼펜과 달라 물에 젖으면 글씨가 모두 번져서 그렇잖아도 못 알아보는 글씨를 더 못 알아보게 된다는 것.
그렇게 만년필을 얼마간 사용하다가 곧 시들해져선, 다시 모나미153 볼펜을 애용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이유인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선물로 꽤나 괜찮은 만년필을 받았다! (만년필 전문가들에게도 꽤나 괜찮은 만년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인에겐 너무도 멋진 만년필이었다.) 우헤헤. 그것도 잉크병에 펜촉을 담겼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잉크 카트리지만 갈아주면 되는, 그래서 잉크가 흐를 염려가 없는 그런 만년필! 이 허영심을 어쩌지 못하고,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해선 몇 년 간, 물에 젖어도 문제가 없을 그런 글은, 모두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다(수업노트도 만년필로 썼다 -_-;;; 크크크). 그러다 또 얼마간의 불편함으로 쓰기를 중단하고 볼펜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시 허영심이 들면 만년필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만년필을 잊었고, 만년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았다.
만년필을 찾고, 문구점에 가서 잉크 카트리지를 사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는데, 으아, 좋아. 흐흐. 괜히 자꾸만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어찌할 수 없어,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을 끄적이기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게 가능한 건 펜글씨를 선호하기 때문일테다. 물론 이러다 또 시들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한시적으로나마 이런 허영심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라고 우기고 있달까. 흐흐. ;;
하지만 만년필과 관련한 글을 써야지 했던 건, 며칠 전 라디오를 듣다가 종이에 펜으로 쓴 편지를 손글씨로 표현하는 디제이의 말을 듣고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펜으로 쓰는 것 뿐 아니라 키보드를 통해 글을 쓰는 것 역시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펜으로 글을 쓰는 루인이지만, 한편으론 모니터를 보며 글을 쓰고 수정하고, 꽤나 긴 글도 모니터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꽤나 부러워하는 편이다. 펜으로 글을 쓴다는 건, 수정을 할 때도 일일이 다 프린트해서 펜으로 수정을 한다는 걸 의미하는데, 사실 이러다보면 꽤나 많은 종이를 낭비하기 마련이다. 이면지를 활용하거나 양면을 다 활용한다고 해도 종이가 소비되지 않은 건 아닌데, 이런 점에서 항상 갈등을 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를 볼 때마다, 적어도 모니터로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어지간한 논문을 읽을 수 있다면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좋은 글을 쓰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흑, 이제까지 쓴 글을 떠올리면ㅠ_ㅠ 이럴 때마다 이순원씨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는 글을 쓸 때마다 자기가 살던 곳의 나무들을 떠올린다고.
또 다른 상념으로 넘어가면,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모니터로 글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기에 종이책은 적어도 백 년 안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추세론 훨씬 일찍 종이책이 없어질 것 같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로 비용이 적게 들어갈 테니까. (비용하니까 떠오른 불안은, 이러다 전공서적들 혹은 이른바 "전문서"들은 죄다 전자출판을 하는 건 아닐런지. 흑. 그러면 안 되는데…) 어쩌면 몇 십 년 안에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보다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더 많아 질지도 모르겠다. 뭐, 이러다 언젠가 종이책은 고대의 유물이 되겠지.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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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펜으로 쓸 수밖에 없는데, 그 원고를 보관하면 의미가 있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했다. 흐흐. -_-;; 예전에 작가들이 모두 키보드로 글을 쓰면서 "육필원고"가 없다는 말이 떠올라 이런 상상을 했지만, 이런 상상을 하기 전에 공부나 좀 하라고! 흑흑흑(←내일 있을 어떤 일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기대하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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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시험은 무사히 끝났어요. ^^
그리고 전자책이란 거 아주 회의적이었던 제가 요새는 전자책(읽고 삭제할만큼 심심풀이용)을 구입하고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저장매체(pmp라든가)를 살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 보면 좀 놀라워요. 변하기 싫고 나름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변하고 있네요. 흐흐
그리고 위에서 이영하씨라고 했는데 실수했어요. 소설가 김영하씨를 말한 거랍니다. 에고;
19금 이라는 말에 갑자기 웃음이 났어요. 흐흐.
루인이 원하는 분야는 의외로 전자책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살짝 놀라고 있어요. ;;;
근데, "이영하"를 아무 생각 없이, "김영하"로 읽었어요... ;;; 흐흐흐. 지다님께서 직접 지적하지 않으셨으면 그냥 "김"영하로 계속 읽었을 것 같아요. ;;;; 헤헤
근데, 유명해 질 것 같지가 않아서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