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중언부언합니다...]

2023년 6월 16일로 이글루스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나온지는 몇 달 되었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가, 문득 떠올라서 지난 5월 나는 한때 즐겨 찾았던 몇 명의 이글루스 블로거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과정도 이제는 낯선 방식이었다. 크롬 즐겨찾기에 백업되어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던 즐겨찾기 목록의 분류를 통해 이글루스 블로거를 찾았다. 이미 이 과정 자체가 낡은 습관처럼 느껴지는데, rss리더를 사용하던 시절 좋아하는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다면 rss리더에 등록하기도 했지만 웹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등록한 다음 드나들었다. 그 시절은 자신의 즐겨찾기 분류 방법이나 형식을 공유하는 문화도 있었던, 뭐 그런 오래되고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다. 즐겨찾기를 사용하는 형식은 SNS 시대의 관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SNS는 나의 세계에 다른 이들의 글을 불러와 나의 세상을 만드는 형식이고(rss리더가 이와 유사했다), 즐겨찾기는 상대방의 세계로 가는 주소를 저장한 다음 내가 그곳으로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네이버처럼 이웃을 맺는 형식이 덜 중요하던 시절의 ‘라떼는 말이야’ 같은 이야기다.

아무려나 유명했던 이글루스 블로거 몇 명을 찾았더니 다들 이별을 알리고 있었다. 댓글을 한 번도 단 적이 없는 그들이지만(그만큼 유명했던 블로거다) 이별을 알리는 글을 보니 정말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구나 싶었다. 어떤 블로거는 백업 기술을 공유했고, 어떤 블로거는 백업을 포기하며 그냥 자신의 글이 사라질 것을 공지했다. 물론 많은 블로거는 이미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한 다른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블로그 서비스는 저무는가…

하지만 블로그 자체는 망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네이버의 블로그는 페이스북을 늙었다고 여기는 10대와 20대의 사용자가 증가하며 인기있는 서비스로 거듭나는 중이다. 누가 블로그를 쓰냐고 했을 때, 10-20대는 블로그로 넘어가고 있었다. 카카오는 티스토리와 카카오 스토리라는 블로그 서비스가 이미 있음에도 브런치를 런칭해서 인기를 끌었다(과거형이다). 포스타입은 소소하게 유명해서 적잖은 논쟁이나 기록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이름을 타고 있는 얼룩소는 이런저런 논쟁을 읽으키기도 했다(물론 얼룩소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글을 쓰려는 사람만 있고 읽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블로그 서비스 자체가 종말인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블로그 서비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컨셉(하지만 이미 익숙한 컨셉: 공론장을 주장하는 얼룩소의 컨셉은 블로고스피어와 얼마나 다른 컨셉인가)을 주장하며 등장하고 있다. 그냥 이글루스 운영 업체의 한계에 더 가깝거나, 이글루스 자체의 어떤 성격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만약 블로그 자체가 망하는 추세라면 네이버 블로그의 사용자 증가는 네이버의 조작이어야 하고, 브런치, 포스타입, 얼룩소와 같은 서비스의 등장은 돈이 남아 도는 창업자의 유희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니 결국 이글루스를 비롯한 인기 없는 블로그 서비스의 종말에 더 가깝기는 하다. (이글루스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 소수의 헤비유저 중심이지 않았는가와 같은 논쟁은 별개로 하자.)

하지만 유명했던 블로그 서비스의 종말 소식은 참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물론 설치형 블로그가 아니라 서비스형 블로그는 무료인만큼 시작하기 쉽지만 언제든 운영 주체의 사정에 따라 개별 블로거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것은 시작부터 이미 예고된 결과다. 그럼에도 개인 블로거 한 명의 사라짐이 아니라, 싸이월드 수준은 아니겠지만 한때 매우 유명했던 서비스의 사라짐, 그로 인해 유명 블로거가 대량 사라짐, 그리고 그 세월의 기록이 모두 사라지는 결과는 간단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서비스를 접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나마 이글루스가 연말까지는 자료 백업을 지원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글루스가 사라지는 문제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주는 타격 자체는 별로 없다. 오랜 만에 찾은 이글루스 블로거는 거의 몇 년 만에 찾아간 것이고 그러니 없어진다고 해서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지금 이 블로그는 어차피 설치형이고 내가 결제만 계속한다면 유지될 것이며 이곳이 유지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변방의 쪼렙 블로거’로 남을 것이다.

한때는 얼마간의 농담을 담아 ‘변방의 쪼렙 블로거’라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진짜 ‘변방의 쪼렙 블로거’가 되었다. 서비스형 블로그는 손쉽게 이웃맺기나 서비스 내의 구독 같은 형식을 통해 서로를 찾기 수월하지만, 설치형 블로그는 정말로 변방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이상 결코 찾을 수 없는 그런 웹의 먼지에 불과하니 변방의 변방의 변방에 가깝다. 블로거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이제는 찾기 어려우니 나를 블로거로 소개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때때로 블로거라는 표현은 너무도 낡아서 ‘아직도 그러고 사니?’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유튜버가 의미 있는 명칭이자 자기 소개 용어로 쓰일 수 있지만 트위터 사용자를 이제는 트위터리안으로 부르지 않은 것과 비슷한 감각이기도 하다. 브런치 사용자는 블로거라기보다 브런치 작가로 불리고 있으니 블로그라는 형식은 남았지만 블로거라는 명칭은 이제 희소하고 희소한, 낡고 낡았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변방의 쪼렙 블로거이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가 사라졌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서비스형 블로그를 이용했다면 나는 이곳을 진작 버렸을지도 모른다. 변방의 먼지여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글을 쓰고 있고, 어떤 심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한때 독립 언론, 1인 미디어는 블로그에 있었고, 이제 독립 언론과 1인 미디어는 유튜브에 있으니(나는 방금 뉴스민에서 올린 홍준표의 폭언과 대구퀴어문화축제의 현장 영상을 보았다) 이런 심정적 영향은 그저 추억 소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이 심정은 무엇일까?

… 사실 나는 이 글의 초안을 5월 초에 작성했었다가 한동안 방치했다. 그리고 다시 작성하고 새롭게 고치고 고민을 덕지덕지 붙이며 중언부언하고 있다. 그 사이 아쉬운 감정은 계속 남지만 이글루스의 종료가 한 시대의 종말은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여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계속될 것이고, 그저 이용자가 계속해서 줄었고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서비스의 운영 종료는 웹 시대에 익숙한 일이다. 구글도 가망 없는 서비스는 가차 없이 종료시키는데 이글루스의 종료가 또 무어 그리 큰 일이라고… 그럼에도 이글루스에서 논쟁 하고 싸우면서도 사용했던 이들에게, 한 시대의 기억을 기록한 서비스를 만든 이글루스 관계자들에게 어떤 흔적을 보내고 싶기는 하다.


2023/06/17 16:10 2023/06/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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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의 부스행사 및 퍼레이드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느라 고생한 끝에 을지로2가 부근에서 2023.07.01.에 열린다고 밝혔습니다.


홍준표가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두 가지 문제: 나쁜 영향은 끼칠 가능성이지 확정이 아니고, 퀴어 청소년을 삭제합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의 입장과 고민은 인터뷰에서 참고하시면 됩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2023.06.02. 기획강연을 시작으로 열리며, 2023.06.17.에 퍼레이드가 열린다고 합니다.


퀴어로 살아가는 두 여성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가 7월에 개막합니다.


사이클링 선수 나화린이 2관왕에 올라 전국체전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스포츠 참여를 둘러싼 익숙한 논란을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2024년 공화당 대선 예비 후보 중 한 명인 니키 헤일리Nikki Haley는 CNN타운홀에서 스포츠팀에 트랜스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십대 여성의 자살율을 연관짓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헤일리는 생물학적 소년이 여성 라커룸에 있다는 사실에 왜 소녀들이 익숙해져야 하냐며, 십대 소녀의 1/3이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연결시켰습니다. 당연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와 십대 여성의 자살 고민 사이에는 관련이 없습니다.


플로리다는 새로운 법을 통해 아동 청소년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체로 논쟁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플로리다의 법안은 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접근권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 성인 트랜스젠더퀴어는 대체로 전문적인 간호사를 만나고 종종 원격 의료를 통해 의료적 조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새로운 법안은 반드시 의사를 직접 만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사와 약사가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에 필요한 처방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퀴어 인구 통계로 유명한 윌리엄스연구소에 따르면 플로리다에는 94,900명의 트랜스젠더퀴어 성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입니다.


텍사스의 드랙 공연 금지법과 관련한 자세한 기사입니다. 텍사스 의회는 최근 텍사스 상원 법안(SB 12)를 통과시켰는데요, 이 법은 아동 청소년이 참석한 곳에서 "성적 지향 공연"을 금지하고 있으며, 규범적인 젠더 표현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공연자에 대한 처벌을 포함하고 있어 통상 드랙 금지 법안으로 불렸습니다. 이 법은 최종 "남성 또는 여성의 성적 특징을 과장하는 장신구 또는 보철물을 사용한 성적 몸짓의 전시"를 금지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성행위와 관련한 "실제 또는 모의 전시나 표현" 및 가시적인 "성적 자극" 장치, "성행위" 전체를 구성합니다. 공연 출연자가 언급한 행위를 하거나 "성에 대한 호색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누드일 경우 A급 경범죄 혐의로 처벌받습니다. (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 참조.
이 법은 명시적으로 드랙 공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언제든 선택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람다 레걸(Lambda Legal South Central)의 한 활동가가 지적했습니다. 사실 드랙은 셰익스피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의 전통적인 예술 형식이기도 하고, 트랜스젠더퀴어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이자 저항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법으로 이제 흑인과 트랜스젠더퀴어는 더욱 표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적 몸짓이나 관심을 야기하는 행동 등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법인아라는 점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반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체포되고,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미주리주 십대 청소년 트랜스젠더퀴어의 의견을 담은 기사입니다. 이 글은 미주리주가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에게 너무 많은 권리가 있어 이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고 지적하며 시작합니다. 저자는 첼시 프릴스Chelsea Freels로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며 로봇 공학을 좋아하며, 2년 전 사람들에게 첼시로 커밍아웃했고 로봇 팀과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하고 의료적 조치를 진행했지만, 미주리주는 2023년 아동 청소년에게 너무 많은 권리가 있다고 결정하면서 모든 과정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미주리주 상원 의원 마이크 문(Mike Moon)은 SB 49를 발의했고, 미주리주 법무장관 앤드류 베일리(Andrew Bailey)는 비상 규칙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를 금지하는 법을 도입했습니다. SB 49는 잘못된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간다는 두려움을 준다면, 법무장관의 비상 규칙은 공포를 야기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미주리주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은 18세 생일이 되면 호르몬 투여 등의 계획을 밝히곤 했는데 이제 이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입소스IPSOS LGBT+ Pride 2023 설문조사(Ipsos의 Pride 2023 Global Advisor Survey)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료적 조치와 관련해서는 엇갈린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략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 오늘날 영국인의 3명 중 2명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차별을 경험한다고 답함
- 77%는 트랜스젠더퀴어의 고용 및 주거 차별에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영국인은 의료적 조치에는 가장 적은 수치로 지지함
- 동성 커플의 결혼 허용 및 자녀 입양에 대해 다수가 지지
- Z세대에서 퀴어 가시성이 높음
또한 영국인의 조사 결과만 살펴보면
- 영국인 64%가 트랜스젠더퀴어가 상당 정도의 차별을 받는다고 답변, 19%는 차별을 거의 혹은 전혀 받지 않는다고 답변
- 77%는 트랜스젠더퀴어가 고용, 주거, 식당 및 상업 시설에 대한 접근에서 발생하는 차별에서 보호가 필요하다는데 동의
- 47%는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이 부모의 동의 하에 의료적 조치 취할 수 있다고 동의
- 47%는 여권 등 정부 문서에 남성/여성 외에 다른 옵션이 필요하다는데 동의
- 40%는 트랜스젠더퀴어가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해당하는 공중화장실 사용에 동의
- 36%는 성전환에 필요한 비용이 건강보험에 적용받아야 한다고 동의
종합 정리하면 영국인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차별 받고 있다는 데에는 더 많이 인식하고 있지만, 차별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중간 수준에서만 동의했습니다.
참고로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30개국 중에서 한국, 동유럽 전역, 영국, 미국이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지지가 가장 낮았다고 합니다.


입소스 조사의 요약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를 따로 살필 수 있습니다. 한국은 1천 명이 응답을 했습니다.
- 응답자중 정체화 비율의 경우
- - 레즈비언/게이/동성애 1%. 양성애 3%, 판/옴니 1%, 무성애 1%
- - 트랜스젠더퀴어 2%
- - 퀴어 전체는 7%
- 친구나 친척, 동료 등 아는 사람 중에서
- - 레즈비언/게이/동성애 7%
- - 바이 5%
- - 트랜스젠더 2%
- - 논바이너리 및 젠더비순응 3%
- 동성 커플의 입양 적극 지지는 45%, 잘 모름(not sure) 9%, 강한 반대 46%
- 동성 커플의 양육 적극 지지 38%, 잘 모름 12%, 반대 50%
- 한국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차별 인식 매우 심각70%, 잘 모름 11%, 별로 안 심각 19%
- 트랜스 차별에 대한 보호 필요 70%, 잘 모름 7%, 보호 반대 23%
-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 접근 적극 지지 61%, 잘 모름 11%, 반대 28%
- 트랜스젠더퀴어의 자기 정체성에 일치하는 시설 사용 지지 46%, 잘 모름 12%, 반대 41%
- 호적상 성별 정정 등 공문서 변경 지지 50%, 잘 모름 11%, 반대 39%
- 의료적 조치에 의료보험 적용 지지 28%, 잘 모름 9%, 반대 64%
참고로 한국은 조사를 진행한 30개국 중 하위권에 속합니다. 일단 트랜스젠더퀴어가 차별은 받고 있지만 보호가 필요한 것도 같지만, 의료 보험은 반대라고 하니...


미국 켄터키주 교육부는 새로운 트랜스젠더퀴어 법에 따른 지침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켄터키주에서 가장 논쟁적인 법은 SB 150입니다. 이 법의 섹션1은 부모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학교가 성, 피임 또는 가족 계획과 관련이 있는 건강 또는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학생이 받고 있다면 이를 부모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부모의 학대 이력이 법으로 인정된 경우에만 통지되지 않습니다. 학생이 선호하는 인칭대명사의 경우 교육부는 지침을 거부했지만, 법원의 판결을 공유했는데요 이 판결은 본인이 원하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법의 섹션2는 성교육과 관련이 있습니다. 켄터키에는 이미 금욕 기반 성교육에 관한 법이 있으며, SB 150은 젠더와 관련한 교육을 6학년 이상으로 제한하거나, 어떤 학생에게도 젠더 정체성이나 젠더 표현, 성적 지향에 대해 가르치지 않도록 하는 선택권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부모는 교육구의 성교육 과정을 검토할 수 있고, 자녀를 제외시킬 수 있습니다. 법의 마지막 섹션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자기 정체성에 부합하는 화장실 등의 사용을 금지하지만, 교육구는 변호사와 상의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퀴어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는 트랜스젠더퀴어 변호사가 온라인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나카오카 슌(Nakaoka Shun)은 트랜스여성이며 현재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인데요, 주말부터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살해 위협을 포함한 15개의 명예 훼손 메시지가 게재되었다고 합니다. 남자가 여자 행사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며, 나카오카는 협박죄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의 교정 시설에 수용 중인 트랜스여성 크리스티나 러스크Christina Lusk가 여성 교정 시설로 이전된다고 합니다. 러스크는 여성 전용 교도소인 샤코피 교도소로 가기 위해 2019년부터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미네소타의 젠더사법 책임자인 Jess Braverman은 이번 합의를 통해 교정시설이 시설에 보호된 이들에 대한 중요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러스크가 기꺼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구금된 트랜스젠더퀴어는 이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주거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었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미네소타 교정국(DOC)은 러스크가 소송을 제기한 뒤, 새로운 트랜스젠더퀴어 정책을 마련했으며, 이제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를 보장하고 자신의 젠더 범주와 일치하는 시설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네소타의 구금시설에는 8,000명 중 48명의 트랜스젠더퀴어가 있다고 합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의 맨스필드 칼리지는 역사학자 매트 쿡Matt Cook 교수르 대학의 섹슈얼리티 역사의 조나단 쿠퍼(Jonathan Cooper) 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역사 연구에서 퀴어 역사가 중심이 될 것을 의미하며 영국 퀴어 커뮤니티의 중요한 성과라고 합니다. 쿡의 역할은 2021년 세상을 떠난 인권 변호사 조나단 쿠퍼 OBE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자리입니다. 쿠퍼는 세계 퀴어의 권리를 위해 애써왔으며, 우간의 동성애 혐오법 반대 투쟁, 영국 교호의 퀴어 포험 촉구 등을 조직했습니다.ㄹ


GLAAD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퀴어 성인의 75%는 광고에서 퀴어가 등장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미국 성인 2,533명에게 질문을 한 결과, 비-퀴어 성인의 84%가 퀴어 커뮤니티의 평등을 지지하고, 75%가 광고에서 퀴어의 등장을 편안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또한 73%는 영화나 TV쇼에 등장하는 퀴어 캐릭터를 편안하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버드라이트 광고와 관련한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흠...]


프라이드의 달을 맞아, 미국 퀴어 및 트랜스젠더퀴어 운동에서 흑인의 중요한 역할을 조명하는 기사입니다. 그 시작은 스톤월항쟁에 참여한 마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가 있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흑인 활동가가 퀴어 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너무도 자주 삭제되거나 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반-트랜스 법이 제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흑인 퀴어에게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마샤 P. 존슨이나 실비아 리베아와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에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참고하셔요.]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플로리다의 공화당이 주도하는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2차성징 차단제 투여를 금지하는 법의 일부를 중지시켰습니다. 로버트 힝클Hinkle 판사는 3명의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이 현재 받고 있는 의료적 조치를 계속 받을 수 있다고 가처분 명령을 내렸습니다. 힝클 판사는 젠더 정체성은 현실이며 이와 관련한 분명한 기록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세 청소년의 부모는 Southern Legal Counsel의 변호사 시몬 크리스Simone Chriss를 통해 소송을 진행했으며, 크리스는 이번 재판의 판사 힝클이 2014년 플로리다 주정부의 동성 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이번 판결이 소송인 3명을 넘어 주 전체에 적용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플로리다 주지사의 공보실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우리는 증거보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의료계의 악당과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반-트랜스 법안이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논평이었습니다. 반면 힝클 판사는 젠더 정체성은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또한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를 지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반대하는 이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의료적 조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트랜스젠더퀴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도 지적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법률을 통과시킨 미국의 주를 정리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현재 20개 이상의 공화당 주도 주에서 반-트랜스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주제별로 잘 정리했고, 상단에 주제별로 잘 나눠둬서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임신한 트랜스남성 로건 브라운(Logan Brown)이 Glamour UK의 프라이드 이슈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작가 브라운은 영국의 전설적인 논바이너리 드랙 퍼포머 베일리 밀스(Bailey J Mills)와의 관계에서 예기치 않게 임신을 했으며, 1990년대 초 데미 무어의 임신 사진을 오마주했습니다. 브라운은 건강상의 이유로 일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투여를 중지했었는데 그 시기에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임신 후 트랜스남성이라는 정체성과 관련한 혼란과 고민이 있었지만, 자신은 트랜스남성이며 임신한 남성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비트랜스 여성 네 명이 트랜스여성이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젠더 정체성에 따라 스포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한 코네티컷 학교을 고소했습니다. 이것은 Title IX(교육에서 성차별 금지)를 둘러싼 쟁점이 될 것이며,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트랜스여성 배우 니콜 메인스Nicole Maines는 결코 활동가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2014년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이유로 학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활동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반-트랜스 법안이 제정되거나 논의 중인 상호아에서 메인스는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활동, 배우 생활, 고민 등을 공유하였습니다.



2023/06/12 10:14 2023/06/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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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에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감동적이고 또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경험이기도 한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본 기억이 있다. 이 영화를 방영하던 날 동네 사람들 모두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며 설레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어머니는 감동을 받았고 이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서도 되풀이 했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년)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주인공을 맡은 배우 비비안 리의 후광과 함께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소중한 추억, 즐거움, 재미, 감동이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영문학사의 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평가되고 있으며 당시 풀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면 반드시 상위권에 꼽히곤 했다.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된 지 대략 90년 정도가 지난 최근, 출판사 팬맥밀란은 책 표지에 경고 문구를 추가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우리 역사의 충격적인 시대, 노예제를 낭만화하는 등 문제적 요소를 포함하는 소설”이라는 문장이 그것이다(출처). 이 소설은 미국 남북 전쟁 시대에 흑인 노예제를 자연 질서, 신의 섭리로 인식하던 시절의 감수성을 일정 정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종주의가 생산한 유모(mammy?)와 고용주 혹은 구매자 사이의 관계를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으로 포장하고 있다. 물론 개별 관계에서 유모와 백인 구매자의 가족 사이에 애정과 친밀감이 존재하는 관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에게 따뜻하고 애정어린 보살핌의 기억일까? 누구에게 아름다운 옛시절일까?

비슷한 예시는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 때,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매우 좋아해서, 과정을 보태지 않고도 최소한 100번은 읽었다. 빨간 표지의 하드커버, 그 유명한 계몽사의 세계문학전집 판본으로 읽었는데, 당시 유난히 좋아한 소설 중에서도 『로빈슨 크루소』는 단연 최고였다. 그렇기에 중학생이던 시절, 나는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완역판을 발견하고는 너무도 기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구입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 책을 다 못 읽었다. 아마 그때 이후로 나는 그 책을 지금까지도 다시 못 읽고 있다. 문학사의 맥락에서 디포의 이 소설은 근대 문학 혹은 소설 문학의 성립, 근대적 개인의 구성, 개별적 주체의 생산 등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니 긍정적인 면이 일정 부분 존재하는 소설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역판은 근대적 개인의 모험과 탐험 그리고 역경을 이기는 주체의 모습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았다.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서사에 존재한 모험과 탐험의 내용은 그대로이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미개인’과 ‘야만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 차별로 가득했다. 디포가 소설을 쓰던 시절은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이며 흑인은 기독교적 신앙이 없고 식인을 하는 야만인, 미개인이니 죽여 마땅한 존재이자, 그들을 죽이는 것이 신의 섭리로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디포의 소설은 정확하게 그러한 인식을 근거로 구성되었고, 로빈슨은 인종차별주의자, 살인자, 학살자였다. 다른 말로 어린이용 책에는 빠진 크루소의 모험과 탐험은 침략과 약탈, 그리고 인종차별의 여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익숙하고 행복한 공상을 가능하게 했던 서사에는 이런 차별과 폭력이 가득하다. 콩쥐팥쥐는 재혼한 여성에 대한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며, 혈연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공동체라는 규범을 자연화한다. 신데델라나 백설공주 같은 이야기는 이성애-가부장제 서사를 유일하게 가치 있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로 치환하며,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은 오직 괜찮은 남성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는 규범을 재생산한다. 그래서 제2 물결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화 작업이 활발해 졌을 때, 많은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가는 동화나 고전에 내재한 인종차별, 성차별, 백인중심주의, 화이트워싱의 낭만화, 퀴어와 장애인의 악마화 및 범죄화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비판은 이론적 작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존의 동화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동화를 만드는 방향으로도 전개되었다. 요즘 들어 자주 만날 수 있는 성평등 감수성을 가진 동화, 다양성을 긍정하는 감수성을 담은 동화는 모두 그 시절 페미니스트의 치열한 노력의 성과다.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 퀴어/페미니스트의 다시 쓰기, 다시 읽기 작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고전은 고전으로 인정해라’, ‘동화를 왜 문제 삼느냐’, ‘어린이를 도구화한다’, ‘교조적이다’, ‘어린이에게 페미니즘과 퀴어를 주입하는 폭력이다’와 같은 말은 이미 그 시절에도 팽배했던 비난의 언어다. 하지만 퀴어/페미니스트의 노력은 지금의 새로운 서사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의 새로운 감수성은 최근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따른 변화의 영향도 있지만, 제2 물결 페미니즘이 등장한 후 50년에 걸친 노력이 만든 효과이기도 하다.

자,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변주해보자. 취향이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은 정치에 선행해서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영화 《인어공주》(2023)를 둘러싼 반응을 살피며 촉발되었다.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흑인이라서 안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원하는 주인공 이미지가 아니라서 안 보는 게 맞는 거다.”(이 글에 달린 댓글). 이 문장은 인종 차별을 정치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 소중한 추억의 문제로 치환한다. 취향이나 추억이 정치와 무관한 영역이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인종주의와 관련한 경고가 붙을 이유가 없다. ‘나’의 비비안 리가 인종차별주의자일리가 없고, 라푼젤이 용맹할 이유가 없으며, 신데렐라가 스스로의 성취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흑인은 영원히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유모로 남아야 하고, 라푼젤은 왕자가 구조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어공주 에리얼은 백인이며 붉은색 머리 색깔을 가진 존재여야만 한다는 상상력 혹은 추억 보정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흑인이어서 싫은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봤던 에리얼의 이미지에 부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추억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 추억은 반드시 아름답고 유지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이야기로 예시를 경유해보자. 1932년 용산에서 태어난 후루사토씨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놀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지만, 1945년 8월 부모님과 함께 세간을 남겨둔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후루사토씨는 자신의 생애가 역사의 격량에 휩쓸린 피해자라고 느끼며 용산에서 살던 시절이 그립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2023년 5월에 칼럼 형식으로 게재한 글의 일부다. 식민지 침략국가 국민의 기억 속 한국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었다. 피식민 상태로 살았던 그 시절의 한국인 혹은 조선인도 그렇게 느꼈을까? 물론 개개인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으며, 개인이 국가의 모든 잘못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리는 왜 독일이 지금도 나치 전범과 대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독일이 유난히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집단으로 추방한다. 국가의 잘못에 국가 구성원인 국민 혹은 개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태도는 결국 누구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사태를 만든다. 예를 들어 제주 4.3 사건은 이승만 때 발생한 사건일 뿐 현재 정부가 왜 사과해야 하며, 전두환의 학살은 왜 현 정치권이 정치적 책임을 논하는가? 이것은 모두 지나간 과거에 대한 과도한 정치 공방인가? 역사적 차별과 폭력은 단순히 추상적 국가나 당시의 국가 대표가 져야 할 책임이 아니라 반복해서 고민하고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그런 국가 체제를 지지하거나 승인하거나 방기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니 후루사토씨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식민지 침략 시절을 아름다운 옛시절, 추억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기억하는 행위는 모든 국가 폭력, 침략, 폭거, 약탈을 논의할 수 없게 만든다. 로빈슨 크루소의 학살과 약탈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되고, 스칼렛 오하라와 마미의 관계는 그저 아름답고 소중한 관계가 될 뿐이다. 이것이 추억과 취향의 정치학이다.

인어공주 에리얼이 흑인이어서 무서웠다, 레개 머리여서 공포였다는 식의 언설을 공공연히 마혀, 어린 시절 추억 속의 (붉은 머리 백인) 인어공주를 돌려달라는 말은 식민지 침략 시절이 아름다웠다는 말과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무엇보다 《인어공주》의 애니메이션(1989년)과 TV판(1992-1994)이 나오던 시절은 인종차별이 공공연했으며 대중 매체에서 흑인 캐릭터는 조연인 경우가 더 많았다. 흑인 감독이 1990년대 들어 흑인을 주인공 삼아, 괜찮은 캐릭터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이들 감독 대부분이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하는데 실패했다. 당혹스럽겠지만 흑인시네마의 르네상스는 2010년대 후반으로 명명할 정도로 대중 매체에서 흑인 주인공의 등장은 드물고, 인기를 끌기 어려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최초의 흑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은 무려 2009년 티아나(《공주와 개구리》)였다. 이 말은 초기 인어공주 에리얼이 붉은 머리 백인인 것은 인종이나 어종의 맥락에서 백인어야 해서가 아니다. 그 작품을 생산하던 시기의 인종차별과 백인중심주의가 만든 효과다. 즉 백인 에리얼은 아름다운 과거가 아니라 인종차별, 성차별, 이성애규범성, 장애혐오가 중첩된 지점에서 생산된 캐릭터일 뿐이다. 이것을 그저 기억 속의 소중한 캐릭터로 치환하는 행위는 폭력과 차별을 재생산하는데 동조할 위험을 내포한다.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쟁은 그 작품 하나만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디즈니의 최근 작업 혹은 마블의 최근 작업에 대한 비난과 얽혀 있기도 하다. 최근 마블 영화가 재미 없는 이유가 PC(정치적 올바름)가 묻어서라는 식의 반응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그 평가의 정당성과 별개로, PC가 묻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은 차별과 혐오가 기본값으로 존재해야 재미있다는 뜻인가? 여성은 수동적이고, 악당은 흑인이어야 하며, 아시안은 무능하거나 눈이 찢어진 모습이어야 재미있다는 뜻인가? 백인 남성이 흑인과 아시안과 장애인 등을 대량 학살하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뜻인가? PC가 묻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며, 충격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블 영화는 PC가 묻어서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제대로 사유하고 고민할 줄 모르는 제작자가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에 서사는 못 입히면서 PC나 다양성으로 포장하려 들어서 재미가 없는 것이다. 기획자나 제작자가 아이언맨 혹은 토니 스타크에게는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 상상력(혹은 공감)이 있지만, 캡틴 마블이나 다른 여러 새로운 캐릭터에게는 제대로 된 서사를 부여할 상상력이 부재함에도 본인들이 작품을 제대로 제작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지금의 재미없는 마블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PC가 묻어 재미가 없다면, 이제 아시안 혹은 한국인을 향한 혐오도 용인하고 백인이 아닌 인종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위험하고 열악한 방식으로 묘사해도 용인할 수 있는가? 이런 모든 문제제기는 PC의 효과들인데 왜 어떤 PC는 가치 있는 진전이자 변화이며, 어떤 PC는 작품을 망치는 최악으로 인식되는가?

추억과 취향은 언제나 가장 정치적인 의제이며, 사회적 편견, 차별, 구조적 억압이 중첩된 방식으로 구성된다. 좋았던 옛시절은 문동은의 서술인지, 박연진의 서술인지 섬세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50H50 칼럼🍯)



2023/06/08 12:19 2023/06/0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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