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영화 [300]과 관련한 글을 한 편 올렸다. 수업시간에 제출한 쪽글이었고, [300]과 관련한 부분만 올리면서 [음란서생]과 관련해서도 적었다는 내용을 썼다. 엄밀하게 말하면 쓰다가 말았는데, [음란서생]은 결코 [300]처럼 얘기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음란서생]의 주요 등장인물 중, 연애의 한 축을 형성하는 인물은 윤서(한석규)와 정빈(김민정)인데 처음엔 이 둘의 관계를 "이성애"로 설정했다. 소위 말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지칭하는 그런 방식으로, 안일하게. 이들을 "이성애"로 설정 해야만 [300]처럼 뭔가 "깔끔"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텍스트 맥락에서도 그러하고 루인의 고민에서도 그러하고.


정빈과 윤서를 간단하게 "이성애"라고 부를 수 없었던 건, 계급과 신분 자체가 다른 둘 사이의 연애를, 단지 "여성"과 "남성"으로 간주되는 인물들이란 이유로 "이성애"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 둘의 관계를 간단하게 "이성애"라고 부른다면, 이 둘이 지속적으로 연애를 하는 한 그 연애는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는 지순한 사랑"이란 식의 언설로 반복되거나, 직접 이런 언설로 얘기하진 않는다 해도 은연중에 이런 암시를 할 위험이 있다. 그리하여 이런 식의 설명은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과 계급 차이는 "이성애"라는 젠더-섹슈얼리티에 있어 부차적인 것으로, 젠더-섹슈얼리티만이 본질적이고 인간사에 있어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할 위험이 있었다.


과연 계급과 신분이 다를 때에도 "이성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종차별이 극심한 나라에서 다른 인종간의 "여성"-"남성" 연애, 민족차별이 극심한 나라에서 다른 민족간의 "여성"-"남성" 연애를 간단하게 "이성애"로 범주화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이른바 "연상녀-연하남"이란 관계를 "이성애"란 식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성애 규범"이 요구하는 조건에 일치하지 않을 때에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란 이유로 "이성애" 범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좀 더 힘든 이성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성애"란 식으로 말하면 그만일까?


이런 질문/의문은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비이성애자"들은 젠더-섹슈얼리티로 인해 차별받고 있다는 언설을 통해 마치 "이성애"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편하게 관계를 맺어간다는 식의 효과를 낳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성애"가 있다고 가정할 때, 장애인의 "이성애" 관계는 비장애인의 "이성애" 관계와 동일하게 "이성애"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다면 어째서이고 없다면 어째서일까?


"이성애"란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이성애주의" 혹은 "이성애 규범"은 존재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고 작동하게 한다 해도, 이런 "이성애주의"나 "이성애 규범"이 말하는 그런 "이성애" 관계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이다. "이성애"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정말 그런 "이성애"가 실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퀼트"처럼 엮어가며 구성하는 '정체성'을 젠더-섹슈얼리티로 환원하고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란 식으로 간단하게 규정하며 이런 가정을 통해 분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만약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이성애"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자신은 mtf가 아니라 트랜스여성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자신은 트랜스여성이 아니라 mtf라고 말하는 사람의 연애, 즉 트랜스여성-mtf 관계는 "이성애"일까 "동성애"일까? 루인은 트랜스라고 얘기하는 편인데 그럼 루인의 연애는 "이성애"일까 "동성애"일까? 그냥 "퀴어"일까?


같은 젠더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동성애", 다른 젠더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이성애"라고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를 끊임없이 "여성"과 "남성"의 관계로만 환원하는 방식, "여성"과 "남성"의 관계만을 "이성애"라고 설명하는 방식, 젠더는 오직 둘 뿐이고 그렇기에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란 방식으로 젠더-섹슈얼리티를 간단하게 구분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그런 관습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자 하면서도 [음란서생]을 분석하면서 간단하게 정빈과 윤서를 "이성애"로 가정하려는 루인을 깨달으며, 좀 많이 웃기다고 느꼈다.


더구나 루인에게 이들 관계를 "이성애"라고 명명할 권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루인이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남들은 "이성애"라고 간주할 때에도 자신들은 "이성애" 관계도 "동성애" 관계도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뭔가 전선을 형성하고 싶어서, 너무도 간단하게 범주설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루인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다.


아…, 낚시 바늘만 잔뜩 던지곤 도망치는 글이다-_-;; 크크크


+
[300]글에 답글을 쓰면서 두루뭉실했는데, 그 두루뭉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헤헤. :)
2007/06/08 18:48 2007/06/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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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00]을 가면/가장으로 읽기 Tracked from Run To 루인 2007/06/08 19:00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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