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토] 2007.02.11. 09:40, 아트레온 8관 11층 F-5


01
영화가 끝났을 때 떠오른 건,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아타나주아]였다. 그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는-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한데- 하얀 얼음 위를 달리는 장면이다. [아포칼립토] 역시 달리는 장면이 참 오래도 나온다. 살기 위해서. 잡히면 죽기 때문에 달리지 않을 수 없기도 하고, 죽을 힘을 다해 달리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있는 가족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영화를 읽는 사람이 숨찰 정도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뛰고 또 뛴다. 러닝타임이 137분이라는데 후반부의 30~40분은 달리는 것으로 채워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02
마야 문명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욕을 먹는 것 같다. 일테면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 잉카 문명을 전공한 사람은, 이 영화가 역사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서구의 시선으로 비서구를 야만으로 만드는 전형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칭찬도 하던데.


이 영화를 읽겠다고 했을 때 루인의 의도는 이런 논의들을 루인의 입장으로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루인이 가진 인상은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한 장면이었다.


[먼 황금 나라]라는 아동용 소설이 있다. 실제 아동용인지 아동용으로 개작해서 번역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책을 루인은 참 좋아했는데, 소설 자체의 재미와 함께 마야 문명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루인에겐 마야문명, 잉카문명, 아즈텍문명에 대한 환상이 있다. "환상"이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는 모른다. ;;; 궁색한 변명이지만, 나름 설득력 있다고 우긴다 -_-;;; 흐흐) 이 소설은 마야 문명이 스페인군대에 침략 받기 전의 시기부터 스페인침략 시기를 다루고 있다.


몰랐는데,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 혹은 작품은 [먼 황금 나라] 한 편이 아니었다. 마야문명을 다루고 있는 작품의 상당수는 이 시기를 다루고 있었다. 일테면 [아귀레, 신의 분노]가 그렇다.


그래서 떠오른 건, 도대체 서구 백인들이 이 시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였다. 이런 침략 시기를 그리워 하는 것인지, 그나마 서유럽에서 기록을 하기 시작한 시기이기에 그런 것인지..


[아포칼립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영화 말미에 가면, 스페인군대가 상륙하려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시기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시기에 그토록 많은 집착을 보이는 걸까, 궁금했다.


03
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까지 다 올라갔을 때(디지털돌비 상표 등등;;;;)에도 이 영화와 관련해선 별로 할 말이 없겠다 싶었다. 폭력을 다루고 싶었다면 굳이 마야문명이 아니라 서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이나 다른 전쟁을 다뤄도 될 일이었다. "야만"을 다루고 싶었다면 역시나 서유럽이나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며 하는 일을 소재로 삼아도 될 일이다(일테면 [로드 오브 워]처럼).


왜 굳이 그 시기의 그 공간을 다뤄야 했을까?


혹은 마야문명이 망한 건 스페인침략 때문이 아니라 마야문명 내부의 문제 때문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를 시작하며 인용구절에는, 위대한 문명은 침략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망한다, 는 내용이 나온다. 스페인이 침략하지 않았어도, 서유럽이 침략하지 않았어도 마야문명은 망할 거였는데, 때마침 그 시기에 스페인이 침략했다는 식으로도 해석할 여지를 준다. 그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두서 없이, 이런 저런 의문만 남아 있다.
2007/02/11 17:36 2007/02/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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