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10년 전 방영한 프로그램을 봤다. 외국 어느 지역은 고산지대라 11월부터 5월까지는 푸른 잎채소를 구할 수 없고 주식은 밀가루라고 한다. 그리하여 여러 영양소가 부족한데 그 중에서도 엽산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태어난 20명의 아이 중 8명이, 프로그램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기형아라고 했다. 뇌가 없는 경우, 척추가 완전히 손상된 경우 등 다양했다. 필수영양소 엽산은, 아마도 임산과 출산을 경험했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그런 사람을 살핀 경함이 있다면 매우 중요하고 필수 중의 필수 영양소로 꼽힌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하여 해당 지역를 관리하는 정부는 밀가루에 엽산과 다른 비타민 B 계열 영양소를 함유해서 보급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의 영양 상태와 몸 상태가 개선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은 이것을 기쁜 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냥 기쁜 일일까? 엽산은 태어날 아이의 장애나 다양한 종류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 영양소로 언급된다. 이것은 어쨌거나 의료적 사실일지도 모른다. 임신한 사람에게 엽산이 부족하면 태아는 척추에 심각한 손상을 입는 등 장애인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주장을 믿건 믿지 않건, 이 설명이 맞다고 하자. 그리고 여기서 나의 첫번째 질문, 장애인이 태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엽산을 먹어야 한다면, 엽산 부족을 방지해야 한다면 당신은 먹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 다른 한 가지를 가정했다. 임신한 사람에게 필수영양소 비타민B12가 부족할 경우 태아가 트랜스-비이성애자에 해당하는 어떤 범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 당신은 비타민B12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먹지 말자는 운동을 할 것인가?
(물론 비타민B12는 이것과 무관하며 오히려 채식주의와 논쟁을 야기하는 영양소다.)

한국에선 임신한 사람 대다수가 태아 산전검사를 한다. 태아의 장애 여부,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애가 확인될 경우 낙태를 권유받는다. 이 제도는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한 클리닉에선 산전검사,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가 동성애로 살 가능성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동성애나 퀴어를 거르는 검사는 유지되거나 확대되어야 할까? 장애를 거르는 의도가 강한 기존 산전검사는 유지되어야 할까?

이 질문은 몇 년 전 리키 윌킨스가 제기한 질문을 나의 고민과 엮어 재구성한 것이다. 윌킨스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만약 트랜스젠더인 당신이 어떤 약을 먹고서 더 이상 트랜스가 아닐 수 있다면, 즉 트랜스여성인데 약의 작용으로 비트랜스여성으로 변하고, 트랜스남성인데 비트랜스남성으로 변한다면 당신은 그 약을 먹을 것인가? 즉 당신이 트랜스젠더가 아닐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 약을 먹을 것인가? 트랜스젠더가 사라지게 되는 그 약을 먹을 것인가? 그런데 마찬가지로 당신이 동성애자가 아닐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먹을 것인가? (윌킨스의 질문은 여기서 젠더퀴어의 맥락을 다시 고민하려 하지만 나는 일단 생략하겠다.)

나는 엽산 관련 방송을 보고 질문을 재구성하면서, 트랜스 이슈는 확실히 성적지향 관련 이슈보다는 장애 이슈와 더 많이 공명하고 중첩한다는 고민을 했다. 또한 질병과 장애를 함께 사유하지 않는다면 트랜스 이슈와 퀴어 이슈는 매우 위험하다는 고민을 했다. 물론 장애와 퀴어의 맥락이 다르기에 내가 계속 제기 한 질문은 부당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무엇이 그렇게 다른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이런 구분짓기는 어디서 발생할까? 트랜스에겐 되지만 동성애에겐 안 되는 것, 퀴어에게 해선 안 되지만 장애인에게 해선 된다는 구분은 어디서 발생할까?

몇 년 전 나는 윌킨스의 질문을 읽고, 그 질문이 야기하는 이런저런 고민을 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정도의 질문으로 넘어왔을 뿐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붙들고 질문을 계속하면 글로 완성할 수 있을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질문을 어떻게 이어갈지 내가 더 궁금할 뿐이다.

2017/03/21 23:22 2017/03/2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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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똑같은 변태  2017/03/25 0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트랜스와 장애의 문제가 공명하는 부분은 있지만 똑같은 논리의 혐오에 노출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예를 들면, 트랜스남성인데 비트랜스남성으로 변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변하는지를 논의해봐야하지 않을까요?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로 본인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듯, 그 '반대' 과정도 단일적인 게 아닐테니까요.
    • 또 똑같은 변태  2017/03/25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흠 덧글을 달고 루인님 글을 다시 읽어봤는데, 저도 뭔가 사유가 더 필요한 부분이에요. 장애의 범주... 퀴어의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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