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퀴어 이슈에 특히 집중하는 변호사가 많아지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무척 소중한 존재지. 내가 법제화 운동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좋은 일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나는 법 자체를 퀴어하게 다시 읽는 법(철)학 연구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법학 논문을 읽고 있으면 정말 갑갑하다. 아니, 깝깝하다. 논의는 거의 언제나 '이 정도까지는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준이다. 이른바 진보연하고 지식인을 자처하며 똑똑하다고 알려진 사람의 법학 논문 역시 딱 이 수준이다. 그 정도의 조건은 보수주의적 입장이니까 그러면 안 되며 좀 다르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논의를 펼치는 게 끝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법의 한계 내에서 사유하고 논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의 한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다보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뻔하다. 뻔하다보니 내가 모르는 정보는 얻을 수 있어 유용하지만 의미 있는 논의가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기존의 법학 학제에서 법의 한계를 벗어난 논의를 출판하긴 어려울 것이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게재불가 평가를 받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전부일까? 갑갑하다. 법 자체를 퀴어하게 완전히 재구성하는 작업은 법학 학제에서 공부하는 이들에겐 어려운 일일까? 정말로 재밌는 논의를 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법을 공부하는 동시에 LGBT 운동을 한다는 사람 중에서도 법 관련 글을 쓴다고 하면 언제나 법의 한계에서만 논의를 전개하는 걸 읽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문제의식은 불가능할까? 그리하여 법을 퀴어하게 완전 재구축하는 논의는 어려운 것일까? 퀴어하게 재구성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재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요즘 법 관련 문헌을 찾아 읽으며 자꾸 이런 아쉬움을 느낀다. 물론 아쉬움을 느끼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아쉬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지. 그리고 이제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아쉬움은 부당한 평가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LGBT/퀴어 관련 논문이 본격 등장한 게 1990년대 중반부터란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아쉽다는 감정을 느낀다(이 감정은 정확하게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그냥 구시렁구시렁...


2015/10/16 22:57 2015/10/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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