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인권운동을 해서 10년 정도지나면 지금보다 좋아질까? 그토록 권장/강권하는 커밍아웃은 좋은 일일까? 비판이론을 공부하고 트랜스젠더퀴어 맥락에서 사유하려 애쓰는 나는 이 질문 모두에 회의한다.

무엇보다 좋아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겐 세상이 좋아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별로일 수 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헌을 두고 엄청난 진전인 것처럼 호들갑 떨지만 '여성'청소년 구금시설의 40%가 퀴어다. 무엇이 좋아졌는가? 더 정확하게는 누구에게 좋아졌는가? 왜 동성결혼처럼 이기적 의제가 진보의 징표처럼 쓰이는가? "좋아졌다"란 평가, "나빠졌다"란 평가는 철저하게 그 사람의 입장/위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천명하는 작업이다. '여성의 인권은 과거에 비해 좋아졌고 남성의 삶은 과거에 비해 열악해졌다'와 같은 언설이 분명하게 예시하듯 이런 평가는 발화자의 위치를 드러낸다. 권력자는 언제나 지금이 과거에 비해 살기 힘들다고 느낀다. 타자나 비규범적 존재는 언제나 과거에 비해 좋아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규정된다).

비슷하게 나는 커밍아웃을 마냥 긍정하고 권장하는 입장을 늘 의심한다. 커밍아웃하면 좋을 것이란 일반론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극히 제한된 사람의 경함에 불과하다. 커밍아웃해야 한다, 커밍아웃이 좋은거다란 발언은 그런 발화자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보편적 경험/상황으로 일반화하고 LGBT/퀴어를 동질적 범주로 만든다. 때로 자신의 커밍아웃을 엄청난 훈장 삼으며 자기 언설에 권위를 보장하는 근거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위함하다. 커밍아웃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여전히 커밍아웃 이후 살해되고 집에서 쫓겨나고 자살이 최선의 선택인 상황을 겪는 것일까? 노숙청소년의 절반이 퀴어란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커밍아웃에 강박작인 언설, 커밍아웃을 잣대 삼는 태도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희망을 원하지만 좋아질 것을 말하지 않는 것, 희망을 공약하지 않는 것이 퀴어 정치학이며 퀴어의 역사란 점을 퀴어아카이브에서 배웠다. 좋아질 거란 희망 같은 건 어떤 삶은 판단 기준으로, 다른 삶은 사유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배치하는 작업이다. 인식론 자체를 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퀴어 아카이브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좋고 나쁨을 평가하지 않으며, 희망을 공약하지 않지만 LGBT/퀴어,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은 계속된다. 좋아져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고보면 퀴어 아카이브야 말로 유토피아인지도 모른다. 여러 의미에서...


2015/10/05 23:49 2015/10/0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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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10/06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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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15/10/07 0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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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인  2015/10/07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아! 정말 대단하셔요!
      엄청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감탄스럽고 존경스러운 걸요! 정말로요.
      공부는 자료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고, 자료를 찾을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서 시작하고, 공부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정말 대단하셔요!!!

      그나저나... 음... '혈연가족 탈출'이 목표라면 일차 목표에 집중하셔야... 아.. 아닙니다... ;ㅅ;
      '내가 옛날엔 말이야..' 수준의 이야기라 말하기 부끄럽지만요...
      저도 정말 혈연가족에게서 탈출하려고 고3 때 처음 수능공부를 했어요. 하하 ㅠㅠㅠ 당시 제 상상력으론 대학입학만이 혈연가족에게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거든요. (아.. 부끄럽다.. ㅠㅠ) 암튼 그래서 탈출엔 성공했는데요... 이후로 제가 뭘 하고 싶은지(전공은 원하는 전공이었지만) 한참을 고민했죠.

      아무려나 동기를 꼭 성취하시기를!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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