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지배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 실천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근거는 동의다. 내가 상대방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폴리아모리의 경우 다자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기존의 관계 및 새로운 관계에게 동의를 구하는 점을 강조한다. 나 역시 이 글을 시점에서는 동의가 무척 중요하다고 고민한다. 하지만 문득 고민하기를 동의를 통한 관계란 점을 강조함이 족쇄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페미니즘 연구, 장애연구를 포함한 많은 연구에서 동의는 단순하지 않은 개념임을 지적해왔다. 어떤 사람의 동의는 동의로 구성되지 못 하며, 어떤 동의는 강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동의는 언제나 논쟁적 개념으로 인식된다. 나의 고민은 단순히 이런 성격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직감에 불과하지만 동의를 통해 새로운/다른 성적 실천, 젠더 실천을 정당화하는 전략이 바로 그 실천 자체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관계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혹은 동의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관계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언설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끊임없는 대화와 동의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는다. 젠더 관계에선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믿음이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 자체를 정당화한다면 이것은 다른 의미다. 물론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동의가 관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고민이다.

2015/08/27 16:10 2015/08/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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