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가게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이미 요청 받은 김밥이 있었지만 그냥 한 번 살펴봤다. 나를 등지고 있던, 김밥을 마는 분이 내게 "언니, 포장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얼른 돌아서며 "네"라고 답을 했다. 돌아선 나를 보는 그 분의 표정은 당혹감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막연하게 내가 가늠하기에 '언니'인지 '삼촌'인지를 다시 확인하려는 표정이었다.

일전(그래봐야 얼마 안 되었다)에 나를 보고 '겉으로 보면 완전 남자지'라고 했던 분이 있다. 그런데 그 후 며칠 뒤 멀리서 나를 보고 다가오더니 '여자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가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mtf 혹은 트랜스젠더란 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순간엔 남자로 보이고 어떤 순간엔 여자로 보였다는 뜻이다.

정확하게 이것이 나의 젠더다. 내가 재현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은 젠더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는 느낌이고 좀 더 헷갈림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헷갈림은 내가 선택하거나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려나 어떤 혼란, 헷갈림, '다른' 해석을 야기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젠더, 남자라고 해석했다가 여자라고 해석했다가, 언니라고 부르고선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도록 하는 바로 그 젠더가 나의 젠더다. 흔한 말로는 트랜스젠더라고 혹은 젠더퀴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범주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이런 경험, 일상의 실천에서 포착되는 상황이 나의 젠더다. 나의 젠더는 나의 상황이며, 나의 상황은 나의 젠더다.




2015/04/01 23:21 2015/04/0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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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ㅈㅇ  2015/04/04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누군가 저에게 "트랜스젠더로 살려고 하지 말고 남자로 살려고 해봐" 라는 드립을 쳤는데, 묘하게 그게 생각이 나네요.
    • 루인  2015/04/05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언젠가 "쟤 왕따지?"라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요.
      돌이켜 보면 ㅈㅇ님의 경험이건 저의 경험이건 이 모든 것이 '나'의 젠더구나 싶어요.
    • ㅈㅇ  2015/04/05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자체 왕따라....

      흫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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