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으로 눈부신 밤, 붉은 꽃 피고 지는 시간에 나는 달콤한 꿈을 꾼다. 이 꽃은 어디에서 피어났을까. 이 꽃의 달콤하고 비릿한 향기는 어째서일까. 이 꽃의 황홀함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쌀쌀한 이 계절, 붉은 꽃 피고 지는 시간, 나는 내 마음이 끓어오르고 또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은 붉은 꽃과 함께 그 형상을 갖추고 조금씩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기억이고, 기억은 흔적이다. 기억에 오래오래 남기 위해, 붉은 꽃 피고 지는 시간에 끓어오르고 또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은 흔적을 갖고 몸을 갖는다.

하지만 붉은 꽃 피고 진 자리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살아가기 위해 피어난 붉은 꽃은 그것이 피고 진 자리를 통해 살아갈 힘을 발산한다. 피고 진 자리에 남아 있는 그 어여쁜 흔적, 도톰하게 남아 있는 붉은 꽃 피고 진 흔적, 이 흔적이 내가 삶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그러니 붉은 꽃을 피운 것도, 피고 진 붉은 꽃을 먹어버리는 것도 결국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다.

2014/10/21 06:16 2014/10/21 06:16
Trackback URL : http://runtoruin.com/trackback/2724
  1. 비밀방문자  2014/10/21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