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을 어제 봤다. 영화 [헤드윅]은 무척 좋아하는데 어쩐지 뮤지컬은 관심을 안 두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뮤지컬을 봤다. 음...

그러니까 뮤지컬 [헤드윅]을 기대하고 갔는데 그냥 김다현쇼를 보고 왔다. 헤드윅이 경계에서 살아가는 복잡한 삶은 모두 휘발되고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애드립만 난무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헤드윅은 대학에 들어가는데 김다현이 나 대학 들어갔다고 하니까, 무슨 이유에선지 관객에선 '와아~'가 나왔고 이에 김다현은 '나 유니버서티..'라면서 뻘 드립을 날렸다. 그런데 이게 뭐가 재밌는지 관객의 일부는 좋아했고 이 뻘 드립으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영화에서 헤드윅이 칸트를 비판했다가 제적되는 일화가 나오는데, 뮤지컬에서 김다현은 MT 가서 선배에게 입을 맞추려는데 실패하고 그때 실패해서 6년 동안 키스를 못 한다는 식으로 때우고 만다. 도대체 왜 이런 뜬금없는 애드립이 나와야 하지?

이것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헤드윅이 등장할 부분. 헤드윅이 등장해야 할 그때, 배우 김다현이 등장해선 관객 일부와 적당한 농담따먹기를 했다. 딱 이 부분, 뮤지컬 도입부부터 벙쪘던 찰나다. 그리곤 계속 김다현쇼를 진행했다. 노래하다 말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는데 어제 너무 더워서 모기에 피를 빨려 그렀다는 드립에.. 이런 모든 드립이 헤드윅의 범주를 세밀하게 설명해야 하는 그 찰나에 집중된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준 헤드윅의 복잡한 삶은 뮤지컬에서 쓸데 없는 애드립으로 모두 휘발된다. 그냥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애드립만 난무하고 그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그나마 위로는 이츠학 연기를 했던 서문탁. 영화에서 보던 이츠학의 표정을 서문탁은 체화해서 보여줬다. 그리고 노래는 정말 최고였다. 이츠학의 서문탁이 모든 노래를 다 살렸고 서문탁이 김다현을 철저하게 압도했다. 김다현의 유명세와 달리 노래가 별로였고 서문탁과 화음도 못 살려서 그냥 서문탁이 노래를 이끌고 가는 상황. 서문탁의 이츠학 보러 갔다는 느낌이다.

아무려나 다시는 [헤드윅] 뮤지컬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가사가 매우 중요한 데도 가사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퀴어 작품을 보러 갔는데 퀴어인 관객이 소외당하는 이 상황을, 퀴어 관객이 봉변당하는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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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온전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생략...


2014/08/08 06:10 2014/08/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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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진  2014/08/08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왜 좋은 작품을 애드립으로 망가트려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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