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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와 클리셰는 다른데 클리셰를 나열하면서 로맨스라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로맨스도 없고 로망도 없고 진부함과 관습만 있다. 진부함, 관습, 그리하여 규범적 실천만 나열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래, 그것 역시 사랑일 수 있다. 아니, 그것 역시 사랑이다. 사랑이란 규범의 반복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 사랑이 사회적 변화를 위한 행동이라면 곤란하다. 가장 규범적인 행동만 반복하면서 그 행동이 사회적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무슨 변화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벨 훅스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운동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운동이라고 얘기할 경우, 도대체 어떤 남성과 동등해지려는 것인가를 질문했다. 중산층-비장애-백인-여성은 하층-비장애-흑인-남성과 동등해지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계층 혹은 자신보다 좀 더 나은 남성과 동등하려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벨 훅스는 중하층 계급의 여성, 비백인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지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님을 처음부터 알았다고 지적한다. 노동계급-흑인-남성은 상당한 피억업자기도 하다. 남성과 동등해진다고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동등해지고 누군가와 같은 권리를 갖는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게 아니란 뜻이다. 이럴 때 동성결혼이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어떤 계급의 이성애결혼 양식과 동등해지려는 것일까?


운동을 통해 평등한 상황을 얘기할 때, 역할 모델은 누구인가? 즉 누구와의 평등/동등을 얘기하는 걸까? 만약 이성애자가 하니까 비이성애자도 누리겠다고 얘기한다면 그건 기존 질서의 문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억압 제도를 강화하는 행동일 뿐이다. 나는 LGBT 운동이건 퀴어 운동이건 뭐건, 이런 식의 동화주의를 지향하는 방식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오인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행동이 동화주의가 아님에도 동화주의로 독해되는 경우와 대놓고 동화주의를 지향함은 다르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의 ‘당연한’ 결혼 이슈가 정말로 이성애규범적/동성애규범적 행동의 전형이라고 읽고 있다. 김조-김 커플의 행사가 둘만의 ‘사적’ 행사가 아니라 명백한 공적 사건이라면, 꼭 동성결혼이라는 형식이어야 할까? 이번 행사가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위한 쇼라면, 동성결혼이 최선인지 정말 묻고 싶다. 나는 동성결혼 형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동성결혼 형식이라면, 꼭 지금과 같은 내용이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다. 이성결혼만을 규범화하는 현재 사회 제도를 문제 삼겠다고 할 때, 동성결혼을 주장해야 하는지 결혼제도 자체를 문제 삼을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을 구성하고 효과를 야기한다.


김조-김 결혼쇼에서 가장 불쾌한 지점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동성’결혼 혹은 비이성애결혼을 무시하는데 있다. 기혼이반, 결혼하는 바이, 결혼하는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비트랜스젠더 동성 관계의 공적 결혼, 신문기사에 남아 있는 비트랜스-비트랜스 동성 관계의 결혼은 현존하는 결혼이 이성애-비트랜스젠더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행사는 역사와 복잡한 양상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이 찰나, 김조-김 커플 혹은 그 지지 집단이 얘기하는 동성결혼에 포섭되는 존재는 누군지 묻고 싶다. 이 행사가 상상하는 ‘동성결혼’에 속하는 이들이 누군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조-김 커플이 얘기하는 동성결혼의 구별짓기엔 이성애-동성애(혹은 게이남성)만 있다는 인상이다. 기혼이반, 트랜스-비트랜스 동성결혼 등은 아예 구별짓기의 틀 바깥으로 추방된다. 현재 이슈 구도에서 기혼이반 등은 논의의 대상조차 못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혼을 얘기하고 싶다면 좀 더 다양한 맥락에서 다르게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을까? 난 이 지점이 가장 불쾌하다.


아우, 심란하다.

2013/09/07 06:12 2013/09/07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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