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테면,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나는 호모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지만 “나는 바이가 아니다” 혹은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라는 항변을 듣기는 힘들다. 후자의 항변은, 퀴어 공동체에선 그나마 드물게 들을 수 있지만 여타 사회에선 거의 듣기 힘들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다”와 같은 언설 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언설이 많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언설조차 별로 없다.)

이 항변이라면 항변일 언설은 종종 게이, 동성애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용되곤 한다. 동성애가 무슨 병이라도 되는냥 이렇게 항변할 때, 그것은 혐오의 ‘우아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혹은 이 항변이 게이, 동성애의 가시성과 바이, 트랜스젠더의 비가시성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대표성을 동성애가 취하는 찰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차별에 있어 트랜스젠더는 그나마 가시적인데 비해(차별에 있어선 동성애보다 트랜스젠더가 더 가시적인 것 같기도 하고... -_-;; ) 바이는 이 지점에서도 가시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항변을 조금만 달리 해석하면, 이런 항변을 게이와 동성애의 차별, 호모포비아의 표출로 전유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든다. “나는 호모가 아냐”라는 발화는, 많은 경우 성적 지향보단 젠더 표현을 방어하는 표현일 때가 많다. 소위 남성이 여성스럽거나 섬세하거나 표정이 다양할 때, 이런 행동과 표현은 사람의 다양한 표현 방법 중 하나로 해석되기보다 “쟤 게이 아냐?”로 독해된다. 미국 왕따 논의에선, 호모, 파곳(faggot)과 같은 표현이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젠더 표현을 지칭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동성애 실천을 둘러싼 혐오와 자기 방어 표현이 아니라 동성애건, 바이건, 트랜스젠더건 모를 어떤 규범적이지 않은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심을 방어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자신의 규범성을 주장하는 발화다. 이런 발화를 호모포비아로, 동성애의 부정으로만 전유해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런 항변에서의 게이는 동성애나 게이 남성을 지칭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뭔가 비규범적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게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이런 표현에서의 ‘게이’는 소위 퀴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게이와 발음만 동일하지 그 의미는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반성을 요 며칠 전 했다.

발화를, 용어를, 범주 용어 사용 방식을 좀 더 섬세하게 살표야 할 텐데.. 흠..
2013/06/15 07:46 2013/06/1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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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3/06/20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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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인  2013/06/24 0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오.. 써주세요! 직접 쓰시면 무척 흥미로운 글이 될 듯해요.. :)

      미국에서 동/남아시아 남성은 모두 게이로 통한다는 식의 언설이 있거나, 아시아인은 다른 어떤 범주보다 아시아인이란 범주로만 인식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쵸? 게이더/퀴어더도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거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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