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모완 관련 글을 쓰며 “내 몸은 남자의 몸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몸, mtf/트랜스여성의 몸이다"라고 적었다( www.runtoruin.com/2138 ). 이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나는 남자/남성이 아니며 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남자/남성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매우 곤란하단 뜻이다. 물론 나는 태어났을 때 남자/남성으로 지정받았고 또 그에 따른 방식으로 양육되었다. 이것이 나를 남자/남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남자로 지정받았다는 것이 나를 남성으로 얘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이슈다. 아울러 나는 내 몸을 트랜스젠더의 몸, 혹은 mtf의 몸으로 해석하지 남자/남성이나 여자/여성의 몸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내 몸에 있는 어떤 특질(수염 흔적과 같은 것)은 남자의 생물학적 특질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mtf 트랜스젠더의 자랑스러운/'자연'스러운 특질이다. 이를 두고 “루인은 남성인데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는"이라고 설명한다면 이건 무척 곤란한 일이다.
몸을 해석하는데 있어 생물학적 사실 같은 건 없다. 더 정확하게는 생물학적 사실로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다. 만약 생물학적 사실로 인간을 이해한다면 여성 아니면 남성이란 식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데도 둘 중 하나로만 이해하는 것, 이것은 철저하게 문화적 해석 실천이다. 문화적 해석인데 이것을 생물학적 사실로 믿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생물학적 사실 같은 건 없다. 특정 해석을 유일하고 객관적 사실이자 유일한 언어로 여기는 인식체계가 있을 뿐이다. 트랜스젠더와 관계를 맺겠다는 건 이런 인식체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어렵거나 폼 나는 문장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문제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일탈/특이 현상이나 초월/횡단으로만 받아들이는 바로 그 인식을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트랜스젠더를 안다거나, 나, 루인이란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건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문제 삼는 사회를 문제 삼는다는 뜻이며 인간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이해하는 태도를 문제삼는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은 나의 정치학이기도 하다. 나의 입장에서, 누군가 나를 안다고 얘기하면서 이원젠더를 밑절미 삼아 얘기한다면 이건 모순이다. 명백히 모순이다. 혹은 나를 전혀 모르는 거거나.
어제에 이어 말이 길다. 뻔한 얘기인데도 서두가 길다. 이유가 있다. 우연히 어떤 트윗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호 yoon seongho
@ysimock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게이남성이라 생각하는 (그래서 남성과 흡족하게 연애하는데 남들에겐 당연히 흔한 이성애 커플로 보이는) 여성에 관한 스토리가 떠올랐다. 따로 레퍼런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런 사례가 실재하는지 궁금.
링크 주소로 가면 멘션/쓰레드를 다 확인할 수 있다.
이 트윗만 읽으면서, 좀 건방진 말로, 귀엽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무수하게 존재하는 비이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마치 자신의 신선한 아이디어처럼 얘기하는 용기 혹은 패기에 감탄한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가 낯설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내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계속*
─ tag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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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지금은 마음이 어떠시려나요... 많이 힘들진 않았나요?
말씀하신 부분 중, 트랜스남성이 '내가 여자였으면..' 트랜스여성이 '내가 남자였으면..'하는 부분은 정말 복잡한 언설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럼 그러면 되잖아'란 반응을 야기하기 쉬우니까요.. 그 미묘한 감정을 소통하기가 참 어려우니까요...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나저나 무식하시다니요..! 비공개 님 댓글을 통해 얼마나 많은 걸 배우는데요! :)
암튼... 정말 많이 힘들구나,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어요.. 제가 감히 함부로 짐작하고 단언할 순 없지만 글에 나타나는 느낌으로는 그렇달까요... 좋아하는 감정이 있으니 그냥 친구로 지내고 싶어도 모든 게 어색하고 그러니까요..
그러고보면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엔 참 많은 사회적 규범이 개입하고 있어요. 그 말 속에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식으로 감정을 풀어가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해되고, 나 자신에게 어떻게 보이고.. 등 정말 많은 것들이 개입하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지금의 감정이, 이전에 비공개 님을 설명했던 범주를 어떻게 조금 다르게 변형할지 기대도 되네요.. :)
주로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의 자기 정체성 형성 서사를 설명할 때면 거의 언제나 어릴 때, mtf라면 남자를 좋아하고, ftm이라면 여자를 좋아했다는 식이잖아요. 이렇게 좋아하는 대상을 근거로, 즉 이성애자되기를 통해 트랜스젠더의 젠더 정체성 구성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무척 불편하고 불만인데요..
그럼에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자신의 범주를 다시 설명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겠구나 샆이요. 관계의 성격을 설명하고자 할 때면 나의 범주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범주고 함께 고려해야하고 그러다보면 더 이상 단순할 수 없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제 파트너가 바이라면, 그리고 저는 레즈비언이라면, 우리 관계를 단순하게 레즈비언 관계라고만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바이-레즈 관계라고 말하면 그나마 괜찮을까요? 그런데 저는 트랜스젠더고 상대가 비트랜스젠더라면 바이 비트랜스-레즈 트랜스라고 표현하면 조금은 더 괜찮은 걸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래도 저래도 어색할 거면.. 일단 지르고... 하지만 제가 감히 뭐라고 할 순 없으니까.. 흠... 하하. ;;;
아무려나 이런 고민을 나눠줘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