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쪽글로 쓴 글입니다. 2012년 11월 22일 제출했고요. 동성애와 관련한 사회적 제도적 안전망이 갖추어진 사회에서 동성애가 사라지는 것과 관련한 논문을 읽고 쓴 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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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를 향한 혐오가 사라지면 혹은 이들을 향한 차별이 희미해지면 그때 LGBT라는 각각의 범주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들 범주는 여전히 의미있는 범주로 기능할까, 더이상 의미없고 철지난 유물이 될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로선 퀴어 범주의 의미가 희미해진 사회를 상상하기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퀴어 범주의 사라짐 혹은 희미해짐은 대체로 배제를 통한 사라짐이다. 퀴어는 이미 사라진 존재다. 등장하기도 전에 사라진 상태고 끊임없이 사라진 상태로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사라짐이 배제를 통한 것만은 아니다. 헤닝 베흐와 제프리 윅스가 얘기하듯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다.

덴마크 동성애자의 상황을 논하는 베흐에 따르면, 사회적 변화, 비이성애적 실천의 일반화 및 규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약화는 동성애자가 사라지는 현상에 영향을 끼쳤다. 동성애가 특이하여 어떤 심각한 차별로 은폐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가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서 정치적 범주라는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호모포비아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게이바나 레즈비언바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저 삶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과 고통을 양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영국과 미국 상황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제프리 윅스 역시 비슷한 상황을 고민한다. 결혼이라고 부를 순 없지만 결혼에 준하는 관계, 시민적 파트너쉽(civil partnership)의 법제화는 동성결혼을 상상할 수 없는 것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영국의 경우 최근엔 호모포비아나 트랜스포비아에 대한 형벌을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변화는 세대에 따라 다른 경험일 수 있다. 윅스처럼 동성애운동 초기부터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이 변화가 상당한 노력의 ‘결과’일 수 있지만 후속 세대에겐 당연한 조건일 수도 있다. 차별이 줄어드는 상황이 어떤 사람에겐 역사적 변화고 어떤 사람에겐 그냥 당연한 현상, 내가 사는 삶의 주어진 조건이다. 이런 인식론적, 경험적 차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베흐와 윅스는 이런 변화에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퀴어 정치학이 덴마크에 무관하냐는 질문에 베흐는, 동성애자, 이성애규범성, 호모포비아가 사라짐의 정치학을 제안한다(167)). 동성애가 사라지면서, 동성애 정치학, 동성애를 둘러싼 논쟁, 동성애 정체성 구성의 역사 등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고, 바로 이 현상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의 사라짐이 동성애자를 향한 담론, 여전히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성애규범성에 문제제기하지 못 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동성애 정치학은 여전히 의미있고 필요한 정치학이다.

윅스는 시간 역순의 논의 전개를 통해 동성애 출현을 얘기한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추적하며 연결된 삶(connected lives, reflectice lives)(4)을 설명한다. 이것은 타자와 나의 연결이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윅스는 역사 서술의 일반적 오류를 경계한다. 진보적 신화는 역사의 우발성을 망각하고, 쇠퇴론적 신화는 결코 존재한 적 없는 과거를 찬양하고 현재를 퇴락했다고 여긴다(7). 하지만 역사는 우발적 사건의 우연한 조합이며 각 사건이 서로에게 예기치 않은 영향을 끼치며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개인과 집단의 노력이 개입된다. 그리하여 현재 상황에서 전혀 별개로 이해될 법한 지점/사건이(이를테면 동성결혼과 에이즈) 아귀가 딱 맞지는 않아도 우발적 조합을 이루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바로 이 역사를 아는 것은 동성애가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동성애를 다시 출현시키는 것과 같다. 물론 이것은 동성애 정체성을 본질화하려는 기획이 아니다. 오히려 성적 지향의 정치학이 가지는 역사적/맥락적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는 기획이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시대, 하지만 실상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정치적 권력 작동을 은폐하는 시대에 바로 그 정치학을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동성애가 사라진다고 하는 시대, 사우스파크의 게이 에피소드처럼, 패션과 유행으로 정치학을 소비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고, 그런 삶을 살아본 적 없는 경험의 한계에서 이를 상상한다. 그래서 베흐가 동성애의 사라짐 자체를 정치학으로 논해야 한다는 지적에서 다음을 유추한다. 동성애의 사라짐은 어떤 의미에서 이성애의 은폐며 권력 작동의 은폐다. 동성애가 그저 다른 많은 성적 실천 중 하나일 뿐이라고, 더 정확하게 이성애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랑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동성애 '관용', '포용'이 아니라 이성애의 특권화, 이성애규범성의 자연화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동성애 실천의 사라짐이 아니라 이성애규범성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사라짐이란 점에서, 조슈아 갬슨이 논했듯, 또 다른 배제와 위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사라질 수 있는 동성애는 규범적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실천이며, 그렇지 않은 실천은 다시 한 번 범죄, 병리로 추방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리하여 어떤 동성애가 사라젔고 어떤 동성애는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동성애가 덴마크의 상황처럼 사라진다고 트랜스젠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싸잡아 상상하는 사회에서 동성애의 사라짐은 트랜스젠더의 은폐를 야기할 수도 있다. 트랜스젠더의 젠더와 의료적 이슈가 여전한데도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식일 수 있다. 즉 말하기도 전에 해결되었다고 얘기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흐가 제안한 사라짐의 정치학은 규범성을 질문하는 또 다른 정치학으로 기능할 수 있다.
2012/12/02 19:53 2012/12/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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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2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Ciaran  2012/12/09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인가 뉴스에 떴는데 미국 대법원이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검토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번역하고 싶은 기사지만 언제 할지는 모르겠네요
    • 루인  2012/12/11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법제화, 합법화 이슈는 늘 갈등이에요. 중요한 지점이지만, 필요한 지점이지만 마냥 환영할 수도 없어서요.. 번역 기대하고 있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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