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고양이와 처음 살 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리카가 나와 같은 언어를, 혹은 내가 리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리카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소통에 강박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끊임없이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양이와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주고 받으면서가 아니라 말이 통할 것이란 기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02
설 이전부터 융을 만날 수 없다. 설이 되기 며칠 전 융을 만났는데 그 이후 융을 못 만났다. 밥을 먹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융은 처음으로 밥을 먹으러 온 아이고, 한 동안 집 근처에 자리를 잡기도 했기에 정을 줬는데.. 이 추운 날 안 좋은 상상을 하려다가 서둘러 관뒀다. 그 상상력이 만들 무서움과 공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부디 잘 지내기를...

그리고 어차피 다 스쳐가는 인연인 걸. 그냥 스쳐가는 인연인 걸...

... 이라고 어제 아침 작성했는데, 어제 낮에 잠깐 바깥에 나갔더니 융이 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깡통 간식 사료를 하나 주고, 따뜻한 물을 줬다. 융은 맛있게 밥을 먹었고 그 틈을 타 난 (캔사료를 주느라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등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좀 야위었다. 흠...


03
루스는 이 추운 날에도 여전히 밥을 먹으러 온다. 아침에 물을 주면 그 자리에 앉아 한참 마시기도 하고. 이렇게 꾸준해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04
임시대피소 박스가 스크래처로만 쓰이는 줄 알았는데, 설 전까지는 루스가 안식처로 사용했다. 그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시험삼아 박스 근처에서 간식거리 포장을 뜯는 소리를 냈더니 후다닥 기어나오더라. 흐흐. 어떤 날은 루스가 박스 안에 있고, 허냥이가 박스 위에 올라가 있곤 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가 박스가 좀 허물어지면서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 ㅠㅠ


05
집 근처 흰둥이 둘이 어울려 있곤 한다. 어느 집 지붕 위에 둘이 딱 붙어선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 두 고양이가 어느 날 집 앞으로 밥을 먹으러 왔다. 오홋. 종종 들리는 분위기다.


06
어떤 날은 밥이 거의 안 줄었고 어떤 날은 아침 저녁으로 밥그릇을 가득 채워야 한다. 꾸준히 드나드는 고양이도 있고 가끔 들리는 아이도 있겠지. 이 추운 날 부디 무사히 살아 남기를.


07
한편... 바람을 내 배 위에 올려놓으니, 뭐랄까, 그 얼굴이 매우 만족스럽고 또 푹 퍼진 것만 같은 표정이다. 흐흐. 언젠간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표정이다. :)

2012/02/04 07:32 2012/02/0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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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고  2012/02/04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이가 열심히 울어댈 땐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궁금하기도 해요. 물론 대부분 경우엔 "시끄럿! 조용히 해!"라고 야단을 치지만;
    • 루인  2012/02/06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바람이 울면 무조건 껴안아줘요. 그럼 조용해지더라고요. 물론 바닥에 내려놓으면 다시 울어서 난감하지만요... -_-;;
      전 바람이 하는 많은 말이 무섭기 때문에 영원히 모르고 싶어요. 크크. ;;;
  2. 비밀방문자  2012/02/06 0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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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밀방문자  2012/02/22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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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인  2012/02/23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만족스러운 포만감일 때 짓는 그 표정! 딱 그 표정이에요. 흐흐.
      한땐 말이 안 통해 소리만 지르곤 했는데, 이젠 그냥 2초 정도 화난 표정을 짓곤 끝내요. 화내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2초 정도 화난 표정을 지으면 저도 풀리더라고요. (내가 속으로 꾹꾹 눌러담고 사는 편이라, 이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화를 내면 좋더라고요.. 흐흐.) 하지만 역시나 속은 많이 쓰려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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