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들은 나치가 몰락한 뒤 다시 한번 주변화되었고 박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25만 명의 집시들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모스, 326.

트랜스젠더건 다른 어떤 변태건 마찬가지인데,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는 언제나 어떤 권력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 모든 죽음이 애도되지 않고, 언급되지 않는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는 문제지만, 만약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서 유태인이 경제계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다면 그때도 그렇게까지 애도했을까? 만약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의 경제권을 집시의 유족이 쥐고 있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익숙한 질문이다. 던지는 질문도 익숙하다. 모든 죽음이 애도되지 않는다. 죽음을 드러내고 애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망자의 권력을 가늠케 한다. 매우 우울한 일이다.

2010/09/20 22:49 2010/09/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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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진  2010/09/21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우울한 일이라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이 비뚤어진 세상 ㅡ.,ㅡ
    • 루인  2010/09/29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하하. ;;
      이 비뚤어진 세상!
      전 왜 이 말이 재밌을까요? 흐흐흐.
  2. 당고  2010/09/21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 있을 때도 죽었을 때도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 흠.
    • 루인  2010/09/2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심지어 화장을 해도, 어떤 항아리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나무로 짠 박스에 넣을 것인가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네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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