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냥이들 중 리카를 특별히 편애하지만, 이제까진 특별한 애정표현을 안 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제가 리카를 편애한다는 걸 알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아, 물론 그들은 제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 아무튼 지금까진 그랬지만, 이틀 전부터 그냥 리카를 향한 저의 편애를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전엔 음식을 기다리며 저를 바라보던 리카에게 특별식을 주었습니다. 리카가 무척 잘 먹어 기뻤습니다. 음하하. 농담처럼 리카를 납치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알고 있습니다. 길이, 동네가 집인 리카를 좁은 방에 가두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카가 찾아오진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저의 애정을 책임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가 음식을 내놓는 시간에 항상 리카가 저를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리카와 만날 수 있는 날도 있고 못 만나는 날도 있습니다. 아무려나 리카와 만나도, 리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뭅니다. 항상 뒤로 밀리거든요. 동네고양이들 간의 위계질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무려나 사흘 전, 리카가 음식을 일찍 먹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리카는 음식을 다 먹자, 물을 마신 후 제 갈 길을 가는데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리더니 “야옹”하고 울었습니다. 아아 … ㅠ_ㅠ “밥 먹는데 왜 자꾸 쳐다보는 거냐!”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먹었다”는 인사로 이해하렵니다. 이히히.

이틀 전에도 리카는 음식 먹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습니다. 그렇게 밀릴 때마다 리카는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해맑은 얼굴로 삥 듣으려는 표정이랄까요. ;;; 흐흐. 저는 결국 캔으로 된 사료를 슬쩍 꺼내 리카 근처에 두었습니다. 리카는 열심히 먹더군요. 기뻤어요.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니 무려 카노가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도망쳤더군요. 그렇게 도망쳐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먹고 있었습니다. 카노의 미운짓이 얄미웠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리카가 깜짝 놀랐다는 거죠. 리카는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른 곳에 있는 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캔은 그대로 두고요. 저는 캔을 챙겨, 리카가 있는 자동차 아래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리카는 다시 캔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고양이들은 어리둥절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근데 분명 카노보다 덩치가 큰 냥이들도 있었는데 카노 음식을 뺏진 않더군요. 덩치와 위계는 다른 거겠죠?

어젠 사료에 캔을 섞어 주었습니다. 밖에 나가니 여러 냐옹이들이 몰려들더군요. 하루 종일 굶었던 거 같습니다. 대충 경향을 보니, 제가 음식을 주기 전에 충분히 먹었으면 안 나타나고, 못 구했으면 나타나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죠. 아무려나 그 와중에 리카도 보였습니다. 이힛. 저는 우선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치웠습니다. 음식을 두고, 쓰레기를 치우면 다들 도망가거든요. 음식을 먹다 도망치면 건강에도 안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는데, 리카가 한쪽 구석에서 자꾸 저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곳에, 리카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곳에 음식을 두었습니다. 성공! 다른 고양이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리카가 가장 먼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 제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덩치 큰 고양이가 리카를 밀어냈더군요. 밀려난 리카는 다시 자동차 아래서 저를 보았습니다. 리카, 바보! 이 순둥이!! 마침 쓰레기 봉지를 버려야 해서, 玄牝으로 돌아가 음식을 조금 더 챙겨왔습니다. 그리곤 리카 근처에 챙겨온 음식의 일부를 두었습니다. 리카가 먹기 시작하는데요.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또 다른 고양이에게 밀려났습니다. 이이... 리카, 이 순둥이!! 저는 안타까움으로 리카를 보았는데요. 리카 역시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 저를 바라보며 슬슬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리카를 계속 바라보았고, 리카 역시 저를 보며 이동하더니, 제가 등지고 있던 자동차 아래로 갔습니다. 그거야! 저는 자동차 아래, 리카와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 않는 곳에 남은 음식을 두었습니다. 리카 역시 만족스러운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리카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죠. 매우 적은 분량만 남았으니까요. 그래서 리카는 사료음식을 다 먹자 아직 배가 고픈 듯, 제 앞에 앉아선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갈등했습니다. 주머니엔 캔이 있었거든요. ;;; 리카는 일단 저를 한동안 보다가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낮은 담장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쩌겠어요. 다시 고민을 하다, 리카와 떨어진 곳에서 저는 결국 캔을 꺼냈습니다. 바닥에 놓아두고 저는 멀찍이 떨어졌죠. 리카는 얼른 달려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이 리카를 밀쳐낼까봐 리카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리카 역시 음식을 먹는 내내 저를 확인하더군요. 아니, 그냥 신경쓰는 걸까요. "밥 먹는 거 그만 구경해!"라는 의미로. 흐흐. 아무려나 그렇게 밤 늦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자. 농담으로 말했던 리카 납치 기획을 정말 실천해야 할까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리카를 납치하려면 카노도 같이 납치해야 합니다. 둘은 늘 붙어다니거든요. 혼자만 납치하면 분명 외롭고 또 우울할 테니까요. 아무려나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은 리카가 합니다. 그리고 납치를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이사를 해도 괜찮고요. 애정은 언제나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저는 리카에게서 배우고 있으니까요.
2009/12/13 11:46 2009/12/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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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진  2009/12/13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순씨도 서열에서 밀리는 아기고양이였답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때리면 맞기만 하고...
    지금 인간과 8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순순씨는...있는대로 거만해졌습니다 OTL
    • 루인  2009/12/16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8년 간의 생활 속에 이제 고양이가 진정 최고 서열은 자신인 걸 깨달았네요. 으하하. 하지만... 혜진 님의 입장에선.. 흑흑.
    • 혜진  2009/12/18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끔씩 신경질 나면 제 손을 '퍽퍽'소리나게 때려요 OTL
    • 루인  2009/12/20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참, 저도 며칠 전 길냥이에게 손으로 한 대 맞았어요...ㅠ_ㅠ
  2. 애묘인  2009/12/13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냥이네에 가입하려 하셨군요
    가입하셨다면 회원으로 만나게 됬을 수도 있었겠네요.^^
    만약 리카와 카노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신다면 실명인증 해야 하더라도 꼭 가입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실은 실명인증때문에 가입한 곳이 별로 없다는..^^;;;)
    적어도 티엔알과 그 방향, 혹은 그쪽으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실행전,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 도움이 될거예요..
    길냥이를 데려왔을때의 각오와 태도같은것도 미리 마음먹어야 대처가능할터이니까요.
    읽으려 애쓰셨던 공지글은 제가 찾아 퍼올까했는데 현재 폭풍마감이 한달째 지속이고 앞으로도 보름은 더 걸릴듯하여 당장은 엄두가 안 나는...; ;;

    리카라는 아이는 불안하군요..
    그렇게 서열에서 밀리다간 건강한 지금이야 버텨내긴 하겠지만요.
    • 루인  2009/12/16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지글은 다른 분에게 부탁해서 받을 수 있을 듯해요. 말씀만이라도 너무 고마워요!!
      폭풍마감에 무사히 잘 살아남으세요! ^^
  3. 비밀방문자  2009/12/16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루인  2009/12/16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배라니요... 내용 옮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음식을 주기 시작하면서, 은근히 이 자리가 드러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상황인데... 포획의 가능성도 생길 수 있으니, 음식주는 자리를 좀 더 깔끔하게 관리해야 겠어요. 정말... 한 생명으로,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 고양이가 살아가는 건, 여전히 요원한 일인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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