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제와 이런 고백(?)은 참 부끄럽지만 사실 난 숨어지낸 DJ빠였다. (정말 이제 와서 이런 고백을 해서 무엇하랴.) 그가 쓴 책과 그를 주제로 한 책을 열 권 정도 사서 읽었고, 그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내가 DJ를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때는 부산에 살 때였다. 내가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던 것도 DJ를 좋아했고, 지지를 공공연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전두환이 내란음모죄로 재판 받을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래도 전두환이 인물이다”라고 말하던 분위기에서 DJ를 지지한다는 건 대학 가면 곧 데모를 할 빨갱이란 뜻이었다.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선, 더 이상 지지를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건, 뭐랄까, 좀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지하지도, 지지를 철회하지도 않는 대신, 난 예전만큼의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 하길 바랐지만, 그의 정책 중 어떤 것은 꽤나 당혹스러웠고 그래서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진보의 의미, 보수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대시절 그는 내게 진보 정치인이었지만, 이제와 다시 평가하면 그는 말이 통하는 보수 정치인이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그 정도의 정치가 진보로, 좌파로 분류되는 상황에 당황했고 (과장해서)절망스럽기도 했다. 진중권 씨와 같은 장사꾼 말고 말이 통하는 보수 정치가 한국에선 정말 불가능한 걸까, 싶었다.
그래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애증, 혹은 애와 증 사이에서, 기대와 아쉬움 사이에서 그를 기억하며 지냈기에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빈소나 영결식에 가지 않았다. 가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가지 않으며 그저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고, 라디오에서 그의 소식이 나올 때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오늘 영결식과 운구행렬이 있었는데, 운구행렬이 신촌 부근을 지날 때, 난 그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회도 피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저 여전히 숨어서 애도하고 싶었던 걸까?
며칠 째 모차르트의 진혼곡만 듣고 있다.
02
북조선 조문단이 남한에 왔고, 청와대에도 갔다고 한다.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된 지금, 실향민들과 이산가족들은 어떤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을까? 나는 늘 이 이슈가 궁금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DJ는 빨갱이였고, 보수층에게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될 인물이(었)다. 사실 여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실향과 이산의 원흉이라는 북조선에 이득이 될 거라면서 그의 대통령 당선을 저지했다.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역대 정권과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DJ는 빨갱이고, DJ가 집권하면 북한이 침략할 거라며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안보 장사를 했다.
내가 아는 편견에서, 나이가 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의 상당수는 6.25의 트라우마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다. 그들 역시 아마 DJ가 대통령이 되지 않길 바라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안보 장사를 했던 이들의 정권이 끝나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북조선과 남한의 관계는 건국 이후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전 정권에선 매우 드물었던 가족상봉이 상당히 빈번했다. 북조선을 악으로 여겼던, 그래서 DJ를 반대했던 이들의 바람은 그들이 반대했던 인물이 실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2MB가 대통령이 되면서 남북관계는 냉각 상태고 가족상봉은 이제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은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에서 어떤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전히 “빨갱이”일까? 2MB 같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을까? 물론 개인의 정치학을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그리워하면서도 2MB를 지지할 수 있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는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 만은 긍정할 수도 있고,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고. 아마 개개인들의 정치학이 상당히 복잡하게 변했을 듯한데, 어떻게 변했을까? 난 가끔 이런 부분이 궁금하다. 내가 가장 반대했던 인물이 나의 바람을 이뤘을 때, 개인의 정치학은 어떻게 변할까? 가능성은 없겠지만, 일례로 2MB가 주민등록제도를 폐기하고 여성과 남성이란 식의 구분을 없앤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질까와 같은 질문이다.
이제와 이런 고백(?)은 참 부끄럽지만 사실 난 숨어지낸 DJ빠였다. (정말 이제 와서 이런 고백을 해서 무엇하랴.) 그가 쓴 책과 그를 주제로 한 책을 열 권 정도 사서 읽었고, 그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내가 DJ를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때는 부산에 살 때였다. 내가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던 것도 DJ를 좋아했고, 지지를 공공연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전두환이 내란음모죄로 재판 받을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래도 전두환이 인물이다”라고 말하던 분위기에서 DJ를 지지한다는 건 대학 가면 곧 데모를 할 빨갱이란 뜻이었다.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선, 더 이상 지지를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건, 뭐랄까, 좀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지하지도, 지지를 철회하지도 않는 대신, 난 예전만큼의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 하길 바랐지만, 그의 정책 중 어떤 것은 꽤나 당혹스러웠고 그래서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진보의 의미, 보수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대시절 그는 내게 진보 정치인이었지만, 이제와 다시 평가하면 그는 말이 통하는 보수 정치인이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그 정도의 정치가 진보로, 좌파로 분류되는 상황에 당황했고 (과장해서)절망스럽기도 했다. 진중권 씨와 같은 장사꾼 말고 말이 통하는 보수 정치가 한국에선 정말 불가능한 걸까, 싶었다.
그래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애증, 혹은 애와 증 사이에서, 기대와 아쉬움 사이에서 그를 기억하며 지냈기에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빈소나 영결식에 가지 않았다. 가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가지 않으며 그저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고, 라디오에서 그의 소식이 나올 때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오늘 영결식과 운구행렬이 있었는데, 운구행렬이 신촌 부근을 지날 때, 난 그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회도 피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저 여전히 숨어서 애도하고 싶었던 걸까?
며칠 째 모차르트의 진혼곡만 듣고 있다.
02
북조선 조문단이 남한에 왔고, 청와대에도 갔다고 한다.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된 지금, 실향민들과 이산가족들은 어떤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을까? 나는 늘 이 이슈가 궁금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DJ는 빨갱이였고, 보수층에게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될 인물이(었)다. 사실 여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실향과 이산의 원흉이라는 북조선에 이득이 될 거라면서 그의 대통령 당선을 저지했다.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역대 정권과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DJ는 빨갱이고, DJ가 집권하면 북한이 침략할 거라며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안보 장사를 했다.
내가 아는 편견에서, 나이가 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의 상당수는 6.25의 트라우마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다. 그들 역시 아마 DJ가 대통령이 되지 않길 바라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안보 장사를 했던 이들의 정권이 끝나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북조선과 남한의 관계는 건국 이후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전 정권에선 매우 드물었던 가족상봉이 상당히 빈번했다. 북조선을 악으로 여겼던, 그래서 DJ를 반대했던 이들의 바람은 그들이 반대했던 인물이 실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2MB가 대통령이 되면서 남북관계는 냉각 상태고 가족상봉은 이제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은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에서 어떤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전히 “빨갱이”일까? 2MB 같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을까? 물론 개인의 정치학을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그리워하면서도 2MB를 지지할 수 있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는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 만은 긍정할 수도 있고,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고. 아마 개개인들의 정치학이 상당히 복잡하게 변했을 듯한데, 어떻게 변했을까? 난 가끔 이런 부분이 궁금하다. 내가 가장 반대했던 인물이 나의 바람을 이뤘을 때, 개인의 정치학은 어떻게 변할까? 가능성은 없겠지만, 일례로 2MB가 주민등록제도를 폐기하고 여성과 남성이란 식의 구분을 없앤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질까와 같은 질문이다.
부산이 고향이라 가끔 부산에 가면 정말 당혹스러운 일을 많이 겪어요. 가끔은 무시무시하고요. 놀라운 건, 이명박은 싫어하고 비판하면서 전두환은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거죠... ㅡ_ㅡ;;;
"왜 당신은 가야인이면서, 가야인을 죽이는 미실에게 협조하는 거죠?"
그러자 격물사인 월천대사가 하는 말
"대가야가 망할 때, 가야의 왕은 나의 아버지를 가장 먼저 죽였소...(가야의 꽃을 신라에게 줄 수 없기 때문에..)나는 그 때 나를 살려준 사다함에게 의리를 다하기 위해 미실을 도울 뿐이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모순적으로 보이는 입장이 양립할 수 밖에 없는, 그 자연스러운 인과.
그럴 수 밖에 없는 국면의 도래... 그래서 뭔가 변증법이 되는 건가? ㅋㅋ
그런게 재미난 정치 같기도. (대수, 대표화된 정치는 그래서 뒤통수를 맞게 되는 듯)
정말 정치적인 분류방법으론 모순이라 공존할 수 없는 것만 같은 일들이 사실 개개인들에겐 너무 빈번하잖아요. 근데, 이런 복잡함을 풀어내는 건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늘 고민이에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