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중순 즈음이었다. ㅈㅗ선일보는 당시 김영삼 정권이 대통령 후보시절 내세운 공약 중 실천한 것 다섯 가지를 정리한 기사를 실었다. 난 머리가 나빠 다섯 가지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고, 두 가지만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북조선을 지원해서 북조선과 남한의 경제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차 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ㅈㅗ선일보는 북조선과 남한의 경제적 격차가 김영삼 취임 전에 비해 상당히 줄었고, 자동차 사용도 상당히 줄었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무척 당황했다. 분명 비꼬는 기사는 아니었다. 근데 그 기사를 칭찬 혹은 업적 정리로 이해하기엔 당시 시대 상황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다섯 가지 공약 실천은 모두 IMF로 인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IMF로 남한 경제가 무너지면서 북조선과의 경제 격차가 줄었고, 사람들은 기름값이라도 아끼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 기사도 IMF의 효과라고 지적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비판이나 조롱이 아니라 어쨌든 공약을 실천 했음을 강조한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10년도 더 지난 기사기에, 뉘앙스에 대한 내 기억이 정확한 건 아니다.)

천성관 사건을 접하며 난 2MB의 공적을 떠올렸다. 2MB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고위공직자의 비리, 재산 기준으로 상위 몇 %에 속하는 이들의 비리를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정권이 또 있을까? 천성관과 같은 행적이 아는 사람들에겐 공공연하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의심만 할 뿐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 근데 이것이 문제 없다고 느낀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를 추천한 덕분(!)에 각종 비리를 일상으로 접할 수 있다. 정확한 건 아닌데, “잃어버린 10년”의 정권에선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 지난 정권에서 임명하는 공직자들은 ‘어느 정도 검증’한 인물이었다. 즉, 청문회에서 문제가 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수위의 비리가 드러날 사람들은 아니었다. 천성관 사건에 비추어 보면, ‘어느 정도 검증’한 인물을 지명하는 일이 특정 직종과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비리를 감추었다.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은 사람들만 지명했기에 공적으로 알 수 있는 비리도 그 정도였다. 지난 정권에선 비리가 있다고 인식하는 이들(즉, 그들의 입장에서 비리라고 분류하는 일에 관련 있는 이들)은 걸렀기에 많은 비리를 드러낼 수 없었다. 근데 2MB 정권은 다르다. 그들에게 천성관의 비리는 비리가 아니라 “청렴”이라 지명하는데 부담이 없는 듯하다. 그 덕분-_-;;에 날이면 날마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각종 비리를 접할 수 있다. 김대중정권이나 노무현정권이 검찰과 스폰서의 관계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듯하다. 행여 지나가는 말로 언급만 해도 검찰에서 ‘검찰 죽이기’라고 난리였겠지. 하지만 2MB는 다르다. 검찰과 스폰서의 관계를 비롯해 특정 계층과 직종의 비리를 드러낼 기회를 너무 많이 주신다.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경기도 무료 급식안 폐지 건도 그렇다. “잃어버린 10년”의 정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었을까? 폐지하고도 그렇게 큰 소리 칠 수 있었을까? 다 2MB 정권 덕분이다. 어쨌든 업적은 하나 남기셨다.

이민 갈까? ㅡ_ㅡ;;
2009/07/15 14:58 2009/07/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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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진  2009/07/16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혀~ 세상은 요지경이네요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 해대는데, 그 10년이 그나마 제일 나았다는거 ㅋ
    높은데로 올라가려고 양심을 버렸나;;
    • 루인  2009/07/17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짓을 할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흐흐흐... ;;; 정말 높은 데 올라가려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양심과 염치를 버린 건가 싶어요...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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