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겐 새 빗자루를 선물해. 고양이에겐 맛있는 참외를, 지토에겐 차갑고 새콤한 레몬을.


나는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있어. 마녀는 내가 걸을 수 있는 하늘의 길을 만들어. 그 길엔 입술만 남은 고양이의 웃음소리가 맴돌고 있겠지. 웃음소리를 따라가. 나는 웃음소리를 따라가며 사라진 몸의 흔적을 찾아. 고양이의 웃음소리. 늦은 밤 들리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어느 낮 가만히 귀 기울일 때 들리는 작지만 분명한 웃음소리.


지토는 어딘가로 서둘러 달려가고 나는 지토를 따라가. 하늘에 잠시 잠깐 생긴 길을 걸으며 나는 지토를 따라가. 지토는 서둘러 어딘가로 가며,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해. 가는 길마다 귓가에 맴도는 고양이 웃음소리. 울음이 아닌 웃음소리. 고양이 웃음소리는 귓가에 맴도는데 어디서 들리는지 확실하지 않아. 귓가에서만 들리는 소리. 출처가 없어 찾아갈 순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소리. 그리고 나는 지토를 따라가. 입술 모양만 잠시 나타나 웃음소리를 흘리곤, 입술모양은 곧 사라지지만 웃음소리는 남아서 떠도는 길을 걸으며 지토를 따라가.


하늘에 잠시 잠깐 생긴 노란 길. 발을 내딛으면 길이 생기고 발을 떼면 길이 사라지는. 마녀는 저 멀리 어딘가로 가버렸어. 나만 남아 있는 이 길. 모든 게 뒤죽박죽인 기억 속에서도 나는 지토를 따라가.
2008/12/14 20:21 2008/12/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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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베리스트로베리 Tracked from 참 쓸쓸한 당신의 독 2008/12/15 18:22  delete
  1. 당고  2008/12/14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응?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왠지 좋은데요>_<
    • 루인  2008/12/15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의 내용을 섞고, 어설프게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올리며 멋대로 조합한 후, 저의 상상을 살짝 덧붙인 거예요. 그래서 오직 저만 알 수 있는 즐거운 은유 뿐이예요. -_-;;
      그래도 좋다고 하니 고마워요. 헤헤. :)
    • 당고  2008/12/15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트랙백 보내보아요- 이걸 읽고 왠지 생각나서. 사실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ㅅ-;;
    • 루인  2008/12/1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홋. 들어가서 읽어야겠어요. 고마워요.
  2. 비밀방문자  2008/12/15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루인  2008/12/15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요즘 논문 심사로 맛이 간 상태인데 좋은 일도 있어서 복잡한 심경이 글로 나타난 거예요. 헤헤.
      ** 님(비밀댓글인데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건 아닌 듯 해서요;;)과는 무관해요. 너무 좋은 얘기만 하시는데 상처라니요. ^^
      그보다 ** 님의 글이 너무 좋은데 최근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까워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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