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느 도시에 가면 유명한 자살바위가 있다.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살을 하자, 시당국은 대책을 마련했다. 푯말설치. 그곳에 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살을 계획하는 건 아니니 접근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경고 푯말을 설치했다. 내용은 "다시 생각해보시오." 자살을 계획하고 왔을 때 이 푯말을 보고 다시 생각해달라는 의미였다.


그 날도 한 사람이 자살을 계획하고 그곳에 갔다. 벼랑 끝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극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길에 푯말을 확인했다. "다시 생각해보시오." 다시 생각하고 자살을 했다는….


02
한 마을에 마술사가 찾아왔다. 공연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법사의 재주는 상당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여러 마술과 재능을 선보이며, 이제 돼지 울음을 흉내 내겠다고 했다. 꿀꿀, 우는 소리가 돼지 울음과 똑같아서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뭐가 똑같아. 그게 어떻게 돼지 울음이야."라며 마술사를 비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을 욕했고, 네가 저 마술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저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며 다음날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사람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저렇게 긴장한 사람이 마술사보다 잘 할리 없다며 득의양양했다. 이제 돼지 울음 흉내를 보여줄 시간이 되었다.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돼지 울음을 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곧장 비난을 퍼부었다. 그게 어떻게 돼지 울음이냐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다들 비웃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사람은 옷 속에 아기 돼지를 숨겨 왔다. 자신이 소리를 내는 대신 꼬리를 잡아당기며 아기 돼지가 울도록 했다.


03
한 현자가 먼 길을 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서 길엔 수레바퀴 흔적이 많았다. 어떤 곳은 얕은 물웅덩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비가 그친 후 날씨가 맑아 길은 말라있었다. 길을 가던 와중에 현자는 이제 곧 죽을 것 같은 붕어를 발견했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왔을 때 돌아다니다 미쳐 강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아가미가 가프게 움직였다.


현자는 그 붕어를 그냥 지나치지 못 했다. 뭐가 필요한지 물었다. 당연히 붕어는 한 움큼의 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자는 이제 곧 강이 나오니까 땅을 파서 물길을 내주겠다, 한 움큼의 물은 일시적인 거라고 답했다. 붕어는 당신이 물길을 내는 동안 난 죽을 거라고 답했다.


+
이상 어릴 때 읽거나 들은 우화들. 01은 어디선가 들은 얘기. 02는 어린이 탈무드란 책에서. 03은 중국 고사로 기억.


가끔 혹은 종종 이 세 우화를 떠올려. 참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엇.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정말 다양한 얘기가 가능하지.
2008/09/05 11:11 2008/09/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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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구인  2008/09/05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번째 이야기는 부산 태종대에 있는 자살절벽 이야기인 듯 합니다. 제가 가끔 사람들에게 하곤 했는데.. 제게 들으신 건지 아니면 다른 분들에게 들으셨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크크..

    두번째는 음.. 어쩌면 새끼돼지 울음소리여서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꼬리를 잡아당겨서 내게 한 것도..

    세번째는 일단 붕어랑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현자란 거 인정해야겠습니다. 다만 그에게 응급처치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네요. 일단 살리고봐야 장기적인 계획도 가능한데..

    크크.. 그냥 농담삼아 다르게 보기를 해봤습니다. ^^
    • 루인  2008/09/06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첫 번째는 부산 맞아요. 태종대인지 해운대인지 좀 헷갈렸달까요. 전 어릴 때 아는 사람에게 들었어요. 그땐 그냥 황당한 유머 같았는데, 요즘은 언어의 맥락과 관련한 우화가 아닐까 싶었어요. 흐.


      두 번째는, 저도 그런 상상을 했어요!! 히히. 농부는 자신이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농부가 알고 있는 돼지 울음도 결국은 농부가 듣고 싶은 거라고요. 흐흐.


      세 번째는, 그런 상상은 한 번도 못 해 봤는데, 정말 그러네요. 붕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그것만으로도 현자겠어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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