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특강 후기. -_-;;
특강이 있는 수업 수강생들은, 특강을 듣고, 또 다른 문화제 행사에 참가한 후 뒷풀이를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특강을 들은 사람들이, 수업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길, "강사로 온 분, 트랜스젠더예요? 아니에요?"
트랜스젠더의 몸은 트랜스젠더로 드러나는 순간 운동의 장이 된다는 말처럼,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역설적인 방법은, 커밍아웃이다. 특히 나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몇 가지 이유에서 인데, 트랜스젠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정되어 있고, 자신의 주변엔 없을 거란 가정이 너무 강해서 '나'(루인)처럼 생긴 사람은 트랜스젠더가 아닐 거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나 mtf/트랜스여성의 경우, 하리수를 매개로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스여성은 무조건 "여성스럽게 생긴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나, 내 몸의 드러냄,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모든 트랜스젠더들에게,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해당하는 일이고. 그리하여 몸 자체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특강 시간에 웃을 일이 있었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나보다. 다른 어떤 내용보다도 이 사건이 몇몇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던 듯. 이 일화를 가지고 몇몇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강사(이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_-;;)가 트랜스젠더이다, 아니다, 트랜스젠더이면 mtf다, ftm이다, 란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수업시간엔 "차마 못 물었다"고 "물어보면 상처가 될 것 같았다"면서. (왜, 차마 못 물어볼, 물으면 상처가 될 내용이라고 믿은 걸까?)
시간 운영의 미숙으로, 시간이 좀 부족해서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할 만큼은 아니어도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게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전달이 안 되었고, 행위만 남았다. 그리고 그 행위는 "여성스러우니 mtf다"와 "ftm인데 아직 여성스러운 행동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다"란 헷갈림을 유발했다고 한다. 재밌는 일이다. (한 시간 진행하는 특강에선, 이 정도의 헷갈림을 유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긴 하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행위와 트랜스젠더 활동가란 것이 겹치면서 이런 헷갈림을 유발한다는 것. 물론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직접 답해주지 않았다며 어떻게 할까를 물으셨다. 난 당연히 mtf/트랜스젠더라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다른 학교였으면 선생님도 그냥 말했을 테지만,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일단 내게 먼저 물은 것.
학교 내에서 특강을 하며 내가 트랜스란 걸 말하는 데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말해야겠다고 한 건, 좀 답답해서였다. 학과 사무실엔(여러 번 말했듯)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Transsexual이 적힌 포스터가 있는데, 최근엔 이 포스터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라고 했다. 난 이 말이 고민이었는데, "재수 없다."라거나 "혐오스럽다."란 말보다, "있을 수 있지."란 말이 더 문제라고 느꼈다. '쿨'한 척하지만, 그래서 혐오하지는 않고 상대를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존재를 부인하는 말과 같다. 있을 수 있다는 건, 세상에 존재는 하지만 내 주위에는 없다는 말,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없다는 말, 내가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에는 없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을 수 있지."란 말은 에둘러서 존재를 부인하는 격이다. 이런 일상적인 반응이 싫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나를 인지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저변이 너무 없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욕심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욕심은 언제나 단지 나 한 명에게만 모든 의문과 질문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다. 강의를 할 때, 때로 트랜스젠더란 용어를 꺼내지 않고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트랜스젠더란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건 트랜스젠더란 용어에 수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로 "찍히면", 그 사람의 모든 말이 페미니즘으로 수렴되듯. 아울러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면, 나를 매개로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방식을 바꾸기보다 '나' 한 사람이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냐의 여부에만 집중한다. 아무리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도, 결국 강사가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셈이다. 존재 드러내기의 장점이자 단점이겠지.
이건 무수한 비난을 각오한 욕심인데, 미국의 어느 유명한 감독이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만.
특강이 있는 수업 수강생들은, 특강을 듣고, 또 다른 문화제 행사에 참가한 후 뒷풀이를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특강을 들은 사람들이, 수업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길, "강사로 온 분, 트랜스젠더예요? 아니에요?"
트랜스젠더의 몸은 트랜스젠더로 드러나는 순간 운동의 장이 된다는 말처럼,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역설적인 방법은, 커밍아웃이다. 특히 나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몇 가지 이유에서 인데, 트랜스젠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정되어 있고, 자신의 주변엔 없을 거란 가정이 너무 강해서 '나'(루인)처럼 생긴 사람은 트랜스젠더가 아닐 거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나 mtf/트랜스여성의 경우, 하리수를 매개로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스여성은 무조건 "여성스럽게 생긴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나, 내 몸의 드러냄,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모든 트랜스젠더들에게,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해당하는 일이고. 그리하여 몸 자체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특강 시간에 웃을 일이 있었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나보다. 다른 어떤 내용보다도 이 사건이 몇몇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던 듯. 이 일화를 가지고 몇몇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강사(이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_-;;)가 트랜스젠더이다, 아니다, 트랜스젠더이면 mtf다, ftm이다, 란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수업시간엔 "차마 못 물었다"고 "물어보면 상처가 될 것 같았다"면서. (왜, 차마 못 물어볼, 물으면 상처가 될 내용이라고 믿은 걸까?)
시간 운영의 미숙으로, 시간이 좀 부족해서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할 만큼은 아니어도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게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전달이 안 되었고, 행위만 남았다. 그리고 그 행위는 "여성스러우니 mtf다"와 "ftm인데 아직 여성스러운 행동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다"란 헷갈림을 유발했다고 한다. 재밌는 일이다. (한 시간 진행하는 특강에선, 이 정도의 헷갈림을 유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긴 하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행위와 트랜스젠더 활동가란 것이 겹치면서 이런 헷갈림을 유발한다는 것. 물론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직접 답해주지 않았다며 어떻게 할까를 물으셨다. 난 당연히 mtf/트랜스젠더라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다른 학교였으면 선생님도 그냥 말했을 테지만,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일단 내게 먼저 물은 것.
학교 내에서 특강을 하며 내가 트랜스란 걸 말하는 데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말해야겠다고 한 건, 좀 답답해서였다. 학과 사무실엔(여러 번 말했듯)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Transsexual이 적힌 포스터가 있는데, 최근엔 이 포스터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라고 했다. 난 이 말이 고민이었는데, "재수 없다."라거나 "혐오스럽다."란 말보다, "있을 수 있지."란 말이 더 문제라고 느꼈다. '쿨'한 척하지만, 그래서 혐오하지는 않고 상대를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존재를 부인하는 말과 같다. 있을 수 있다는 건, 세상에 존재는 하지만 내 주위에는 없다는 말,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없다는 말, 내가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에는 없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을 수 있지."란 말은 에둘러서 존재를 부인하는 격이다. 이런 일상적인 반응이 싫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나를 인지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저변이 너무 없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욕심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욕심은 언제나 단지 나 한 명에게만 모든 의문과 질문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다. 강의를 할 때, 때로 트랜스젠더란 용어를 꺼내지 않고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트랜스젠더란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건 트랜스젠더란 용어에 수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로 "찍히면", 그 사람의 모든 말이 페미니즘으로 수렴되듯. 아울러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면, 나를 매개로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방식을 바꾸기보다 '나' 한 사람이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냐의 여부에만 집중한다. 아무리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도, 결국 강사가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셈이다. 존재 드러내기의 장점이자 단점이겠지.
이건 무수한 비난을 각오한 욕심인데, 미국의 어느 유명한 감독이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만.
인로는 몇 해 전, 한국에서 했던 세계여성학대회에서 얼핏 봤는데, 아, 그 포스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흐흐.
그 감독은 소문이 무성했던(무성한?), 워쇼스키요. 그냥 추측과 억측만 가능할 뿐이지만요.. ;;;
어쨌든 특강 부럽네요. 우리 학교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랄까?
특강은 불러만 주시면 어디라도... -_-;; 흐
그때 정말 재밌었어요. 흐흐.
사람과 관계 맺을 때, 고민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데, 성별을 우선한다는 건 참 웃기고도 정말 곤혹스러워요.
살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근저에 깔린 의식은 잘 안바뀌는 거 같네요.
에 대한 생각 조각..
음...좋은 지적이에요.
다만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한 것 같아 걱정이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