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음에도 빨래를 했다. 요행수를 노렸달까. 하지만 어제 저녁,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 정말 시원한 기세로 비가 내렸다. 빨래를 할 때부터 비에 젖으면 밤에 다시 빨래를 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서인지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근데 늦은 밤, 玄牝으로 돌아가니, 문 앞에 곱게 갠 빨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에서 한 일이리라. 이런 주인집과 사는 것도 복이다.
(오늘도 지난날처럼 햇살 한 번 좋다. 하지만 사실 이런 날은 빨래를 말리기에 좋은 날이 아니다. 비온 뒤 햇살은 따가워도, 젖은 땅의 습기가 증발할 때 병원균과 함께 증발하기 때문에 비온 뒤엔 빨래를 말리거나 눅눅한 이불을 건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초등학생 때 이렇게 배워서 여전히 이 말을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흐흐.)


몇 주 전, 이사를 간다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살짝 했다. 아침, 씻으려 간 화장실에서, 이사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고개를 살짝 돌리니 무지 큰 세탁기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玄牝으로 이사 온 후 큰 짐만 두 개(세탁기와 냉장고)가 생겼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몇 년은 더 지금 사는 곳에서 살겠다고 다짐을 한 건 세탁기와 냉장고의 부피와 무게 때문이 아니다.


지난 玄牝에서 지금의 玄牝으로 이사 올 때, 얼추 사과박스 정도의 박스로 30개가 넘었다. 그 중 대여섯 개의 박스를 제외하면, 모두 책이었다. -_-;; 이 박스들을 들고 1층에서 4층까지 왕복했을 때, 더군다나 MDF박스 30개도 날라야 했을 때(한 번에 두 개씩이니 총 15번을 왕복해야 했다), 다시는 책을 안 사거나 이사를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처음 이사했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얼추 그 만큼의 책이 방 한 곳에 쌓여있다는 걸 깨달았다. ㅡ_ㅡ 이렇게 쌓여있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이곳에서 눌러 살아야 하나, 중얼거릴 뿐.


그런데 이사를 가야 한다. 다행히 玄牝의 주소지를 옮기는 일은 아니다. 연구실을 다른 건물로 옮기는 이사다. 아악 ㅠ_ㅠ 거짓말 아주 조금만 보태서 이삿짐의 1/3은 루인의 물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물건의 절대 다수는, 역시 책이다. -_-;; 학교가 학과별로 공간을 재배치하면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데 이사를 하기 싫은 건, 책을 포장하고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연구실의 자랑인, 창문 너머의 풍경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서다. 옮기는 건물의 경우 창밖 풍경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고, 방은 강의실을 둘로 나눠서 만든 곳인 듯 하다.


다만, 방의 호수를 아직 확인 못 했는데, 루인이 가장 좋아했던 강의실일 수도 있다는 점이 위로라면 위로랄까. 학부시절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이 아닌 빈 강의실에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시험 때문에 사용하고 있지만 않다면, 거의 항상 그곳에서 놀았다. 옮겨 가는 곳은, 그곳 아니면 그 옆방 정도인 것 같다. 그렇다면, 뭐, 나쁘진 않다. 그래도….
2007/08/16 16:19 2007/08/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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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즈키  2007/08/21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집도 주인집이 윗층인데, 재활용 쓰레기도 치워주시고, 비오면 이불도 걷어주시고, 되게 좋아요!ㅎㅎ
    뭐, 가끔 왜 결혼안하냐고 하실 때만 빼면..;;
    • 루인  2007/08/22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끔 보면 주인집 잘 만나는 것도 복이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 미즈키님도 복을 받으셨어요. :)
      그나저나 결혼과 취직, 진로 문제와 같은 질문은..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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